어떻게 키울 것인가
지아의 두 번째 계절, 가을이다.
야양은 다시 고요를 찾았다. 이 계절엔 잠자리도 유유히 난다. 바람이 간간히 흐트러뜨리는 풀무리와 철 모르는 나비가 팔랑거리는 것 외에는 대부분의 것이 정적을 유지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무겁던 구름은 새벽에 이슬만 뿌려놓고 깨끗이 걷혔다.
화원 아저씨가 봄여름 말고는 키워본 적이 없어 어떤 모습인지 모르겠다 한 장미조팝나무는 단풍이 들었다. 가을이 되면 다시 꽃필 거라 한 블루데이지는 정말로 한 송이씩 얼굴을 들었다. 버들마편초는 피고 지고를 반복하며 정원에 청아함을 더했다.
마당에 턱, 의자 하나 두고 앉아 잠든 아기를 안고 두어 시간 여유를 부렸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살랑이자 아가는 파르르 떨던 눈을 다시 꼭 감았다. 가을이 아기를 키워낸다.
덩치가 제법 커진 사초들의 이삭을 세어보고, 품에 안긴 아기의 가느다란 속눈썹도 세어본다. 그리고 이내 어김없이 생각에 잠긴다. 이 아기가 살아갈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아이의 온전한 독립을 위해서 난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이 맑고 투명한 아이를 무엇으로 채워주어야 할까. 시간이 주어지면 생각은 보다 깊어진다.
이제 좀처럼 얌전히 안겨있질 않는 다섯 살짜리 첫째 아이는 늦가을에 태어났다. 생각은 3년 전 가을로 새어갔다. 아이의 돌잔치였다. 돌잡이판 앞에 선 지우는 많은 사람의 시선에 겁을 잔뜩 먹고 삐죽삐죽 울다 연필을 집어 들었다. 나는 아이의 보장된 진로라도 찾은 듯 기뻤다.
내심 아이가 글 쓰는 사람이 되길 바랐던 나는 한글공부에 욕심을 냈다. 자식농사가 뜻대로 될 리가 없다. 지우는 겨우 지우 두 글자를 그릴줄 알았다. 지금 내가 해야만 하고, 할 수 있는 것은, 그녀들을 가만히 관찰하는 일이다. 무엇을 행했을 때 가장 행복해하는지 자세히 살펴보고 일깨워 주는 것, 아무래도 그것이겠다.
종일 구경해도 지루할 틈이 없는 풍경이다. 고요한 산골동네, 이 계절 가을, 나와 가족의 안녕에 안도하고 올곧게 살아갈 것을 다짐해 보는 시간. 다름 아닌 여기 있는 행복,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