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속았수다
영원히 갈 것 같지 않은 시간이 기어코 흘러갔다. 우리 가족을 송두리째 흔든, 엄마의 사고가 벌써 십여 년 전 이야기가 되었다.
그날의 온도, 공기의 색감, 모든 게 생생하다. 흔들리는 아빠와 동생의 목소리, 들리지 않는 엄마의 소리.. 불행이 엄마를 뒤덮었을 때 일이었다.
엄마는 위독했다. 살던지, 죽던지, 시력을 잃어 장님이 되던지, 그러다 죽던지 하던 때였다. 한 달이 넘은
엄마의 병상생활을 함께할 때였다. 제대로 먹지 못한
엄마는 야위어갔고, 빡빡 밀린 엄마의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자랄 때였다.
늘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던 엄마가 상추가 먹고 싶다고 했다. 부랴부랴 근처 시장에 가서 상추를 사 와 탕비실에서 상추를 씻고 있는데, 아주머니께서 옆에 서서 스윽 흘겨보며 ‘아이고 상추를 처음 씻어보네’ 하셨다.
돌이켜보니, 아, 야속하게도 내가 처음 씻은 상추였다. 엄마는 늘 말씀하셨다. 할 줄 알면 해야 한다고. 그러니 몰라도 되는 건 몰라야 한다고. 그래서 공주 같은 나는, 한쪽 눈이 내려앉은 엄마가 상추를 찾을 때가 되어서야 한 장 한 장 상추를 씻어본 것이다.
세상에 애순과 다른 어미가 없고, 관식과 다른 아비가 없다. 내가 금명이었고, 나는 다시 애순이다. 글쓰기가 멈춰진 나를 다시 이곳으로 이끈 내 애순과 내 관식, 그리고 금명이. 아고 폭싹, 속았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