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경우, 다른 직무를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감히 말하자면, 8년 동안 내가 하고 있는 일인 조직 문화 직무에 높은 만족감을 가지고 있다. 나의 인생 목표가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자’인데, 이 목표와 조직 문화 직무가 발휘할 수 있는 영향력이 연결되어 있어 그런 것 같다. 자연스레 강한 내적 동기를 기반으로 업무에 몰입하다 보니 (물론 실패하는 일도 많지만) 구성원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사례들이 많아지면서 나에 대한 보상과 인정이 자연스레 따라왔다.
그러던 중, 우연히 좋은 기회가 왔다. 내가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실행한 일들을 회사에서 언론에 공개하면서, HR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플랫폼에서 사례 발표회를 해달라는 제안이 온 것이다. 사실 조직 문화 직무를 수행하다 보면 구성원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말하는 일도 많고, 경영진 대상으로 PT를 하는 일들이 많아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크진 않다(물론 매번…… 엄청…… 떨린다!!).
그렇지만 이 일은 다른 경우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외부에 얼굴을 공개하고 내가 진행한 일들을 소개해야 되는데, 사실 내가 진행한 일들이 다른 회사 조직 문화 담당자들이 하지 않는 어떤 특별하고 혁신적인 일들이 아니기 때문에 망설여졌다. 또한 발표를 잘 못할까 봐 겁이 났고, 냉정한 시선으로 평가받을까 봐 무서웠다. 그래서 처음엔 거절했지만 주변 동료들이 이런 기회가 흔치 않다며 내게 용기를 내 보라고 했다.
그러자 문득 ‘망치면 어때? 못하면 어때? 평가받으면 어때?’ 하는 생각이 들어 덜컥 하겠다고 말해버렸다. 발표 자료를 열심히 준비했지만, 발표 당일부터 덜컥 용기를 낸 그날의 나 자신을 원망했다. 그리고 발표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초반 1분은 목소리가 떨리며 긴장됐지만 그 후 1시간 동안 마음의 안정을 찾고 내가 진행한 일들과 내가 느낀 점들을 담담하게 말했다. 1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만큼 몰입하다가 끝났다. 그리고 나는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과 함께 ‘재밌는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후, 담당자로부터 수강생들의 강의 평가도 좋고, 나의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는 피드백을 들으니 직장에서 수행하는 일과는 다른 성취감을 느꼈다. 내가 한 일들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그 후, 개인적으로 업무 관련 문의가 온 분들께 내가 아는 선에서 최대한 도움을 드리고자 노력했다.
첫 번째 외부 강의 사건(?)을 경험한 후, 조직 문화 분야에서 실무자로서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전문가로 성장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부에서는 회사 성장에 기여하고, 외부에서는 비슷한 일을 하는 동료 분들께 미약하게나마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를 계기로 가끔씩 외부 강의 요청이 들어올 때마다 응하게 되었는데, 여러 번 하다 보니 조직 문화 관련 기업 사례를 소개하는 기고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글’은 또 ‘말’과는 달라 기록이 남는 것이다 보니 또 다른 부담이었다. HR 전문 잡지라 얼마나 많은 기업들과 HR 전문가들이 읽으실까 하는 생각에 고민했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도전해 보자는 생각으로 용기를 냈다. 주제 선정부터 초안까지 몇 날 며칠을 고민하며 썼고, 담당자의 도움을 받아 글을 정리해나갔더니 꽤 괜찮은 글이 되었다. 막상 잡지에 실린 내 글을 보니 뿌듯했다. 내가 쓴 글을 몇 번이고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있다가도 없어지는 것을 만들 것이 아니라 나에게 쌓이는 것을 만들자’라고. 이를 시작으로 잘하진 못하지만 기록하는 것에 흥미를 느껴 ㅇㅇ 플랫폼에 조직문화 글을 몇 달 간 꾸준히 기고했다.
기고 글들 중, 일하는 방식 변화를 통한 고성과 조직을 만들어 나가고자 기업에서 OKR과 Agile을 도입한 사례를 소개한 적이 있다. 기업 실무자로서 경험한 과정들을 비교적 상세하게 글에 담았더니, 이를 주제로 VOD 강의 제작 요청이 들어왔다. 이때, 나는 축적된 시간의 힘과 연결의 힘을 느꼈다. 이렇게 외부 강의에 도전한 지 어느새 3년이 지났고,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여러 번의 외부 사례 발표회에 참여했고 매달 조직 문화 관련 기고 글을 썼다. 가끔 내가 쓴 글을 본 타 기업 조직 문화 담당자로부터 감명 깊게 읽었다며 업무 관련 문의와 기업 강의 요청이 올 때마다 ‘나한테 기업 강의를 요청한다고……? 왜……? 나는 기업 실무자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강의는 정중하게 거절하고, 고민되시는 부분에 대해 경험을 토대로 동료로서 도움을 드릴 수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캐주얼 미팅을 제안해 주셔서 두 기업 정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나보다도 나이가 지긋하신 차장님, 부장님들께서 나를 ‘매니저님’ 혹은 ‘선생님’으로 지칭하면서 업무 관련 고민을 털어놓으시며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며 나의 경험을 궁금해하셨다. 2시간가량 열정적으로 말씀드리고 나왔더니 감사하다며 언젠가 도움이 필요할 때 꼭 도움을 드리겠다며 말씀해 주셨다. 사실 전문 강사가 아니기에 그 말씀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했다.
이런 경험들을 한 후,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나를 어떻게 알고, 내가 어느 정도의 역량을 갖춘 사람인 줄 알고 나에게 이런 요청이 들어올까?’ 고민해 보니, 나는 3년의 시간 동안 나도 모르는 새 퍼스널 브랜딩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나는 8년 차 실무자임에도 불구하고, 조직 문화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물론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건 알고 있다. 그들과 내가 다른 것은 나는 퍼스널 브랜딩을 통해 스스로를 마케팅 해왔다는 점이다. 아무리 내가 조직 내에서 인정받는, 실력 있는 팀장이더라도 외부 시장에서 그 사실을 몰라 주면 말짱 도루묵이다. 아무도 나를 불러 주지 않는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외부에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결국 야생에 나와서도 완전히 홀로서기를 하기는 어렵다. 타인의 도움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게 인간이다. 그러려면 평소에 회사 밖의 사람들과도 교류를 해 두어야 한다. 실제로 회사 선후배, 동료들보다 그저 알고 지낸 외부 지인들이 나에게 도움을 줄 때가 더 많다. 즉, 나를 브랜딩하고 알릴수록 잠재적인 기회와 행운을 얻을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자. 이제 다시 생각해 보자.
당신은 회사를 떠나서도 생존할 수 있는,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힘을 가졌는가?
여전히 그 힘을 찾지 못했다면, 자신의 내적 욕망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