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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Aug 26. 2024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준다면

 배우 변우석의 팬으로서 그가 출연한 드라마의 모든 순간, 장면 하나하나가 다 소중하지만, 유독 설레는 기분을 느끼는 건 변우석이 극 중 상대역의 이름을 부를 때다.


 "솔아" 또는 "나보라", 그리고 엄밀히 따지자면 이름은 아니지만 "낭자".


 부르면 사라지기라도 할 듯이 조심스럽게, 때로는 마음을 꾹꾹 담아 다정하게, 어쩔 때는 애써 감정을 숨기려고 무심한 척, 또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터져 나오듯, 그의 고운 입술로 부르는 이름들.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에서 두근거리는 고등학생 선재의 고백 장면이 나올 때도, "내가 너 많이 좋아해"라는 말보다 그 앞에 어렵게 운을 떼는 "솔아."에 더 가슴을 파르르 떨었다. 그놈의 '타이밍'을 찾지 못해 몇 번이고 실패한 고백,  이상은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마음을 말하는 숨이 멈출 것 같은 시간, 주변의 공기마저 긴장한 순간을 뚫고 나오는 "솔아". 이름을 부른 후 마침내 좋아한다는 말을 꺼내기까지 몇 초간의 침묵 속 떨리는 여운을 너무나 사랑한다.


 대학생 선재가 솔이와 교제를 시작한 직후, 날아오를 듯 행복한 마음을 만끽하며 휴대폰 속 여자친구 솔이의 이름에 끝없이 하트를 붙이고 또 붙이는 모습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술에 취해 여자친구의 이름과 똑같은 솔방울들을 주우며 "솔아!" 하며 연신 웃어대던 모습도, 솔이와 이루어지지 못한 과거를 간직한 버전의 선재가 술만 마셨다 하면 솔이가 살던 옛집을 찾아가 공사 중인 집터에 주저앉아 서럽게 외치던 "솔아~"도, 현실에서 다른 사람들이 했으면 못 말리는 술주정에 추태였겠지만 변우석이라서 그저 귀엽다. 그런가 하면 위기에 빠진 솔이를 발견하고 그녀를 구하기 위해 숨 넘어가게 달려오는 장면에서 외친 이름, "솔아! 임솔!!"이라는 외침은 또 얼마나 애절했던가.


 교복 입은 변우석의 매력을 물씬 느낄 수 있는 영화 <20세기 소녀>에서도 그가 부르는 여주인공의 이름은 마음 한 구석에 아릿한 울림을 남긴다. 특히 이 영화에서 변우석이 맡은 고등학생 풍운호는 여주인공을 부를 때 '보라야'라고 이름만 부르지 않고 주로 '나보라'라고 성을 붙여서 부르곤 하는데, 아직 여자를 대하는 게 어색하기만 한, 이제 막 연애라는 감정에 눈을 뜨게 된 풋내기 10대 소년의 감성이 물씬 느껴져서 한결 더 설렌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풍운호가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자 롤러코스터에 올라 "나보라! 좋아한다!"라고 외칠 때의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나보라',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이유로 기차역에서 작별을 고할 때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눈으로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좋아한다, 나보라."라고 내뱉을 때의 아련한 '나보라'. 격하게 부를 때와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아 부를 때, 그리고 이름을 먼저 부를 때와 나중에 부를 때의 극명한 대비로 인해 똑같은 '나보라'라는 이름이 마음속에 다양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극 중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 보고 있어도 이렇게 설레는데, 변우석이 내 이름을 불러준다면? 그 두근거림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보고 싶어 나는 매월 결제를 하고 그와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플랫폼의 노예가 된다. 그의 이름과 함께 '메시지가 도착했어요.'라는 플랫폼의 알림이 뜨면 손을 바들바들 떨며 내용을 확인한다. 해당 플랫폼의 변우석 커뮤니티에 가입한 사람은 이미 80만 명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현실, 그중 절반만 유료 서비스에 가입했다고 쳐도 몇십만 명이 동시에 그로부터 똑같은 메시지를 받고 있는 것이건만 어리석은 이 팬은 마치 일대일 메시지를 받은 것 같은 착각 속에 그저 행복하다.


 메시지 서비스를 결제하고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날, 갑자기 그가 '봄봄'이라는 내 닉네임을 불러줘서 소파에서 굴러 떨어질 뻔한 적이 있다. 머지않아 그게 변우석이 정말 내 이름을 하나하나 정성 들여 입력한 것이 아니라, 나는 정확히 알 수 없는 어떤 기능으로 인해 다른 모든 사용자들에게도 본인 닉네임을 부르는 것처럼 보인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하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여전히 그의 메시지에 '봄봄'이 뜰 때마다 두근거리고 떨리는 마음은 여전하다.


 너무나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대스타를 덕질하다 보니, 가끔 그의 이름 없는 팬으로 살아간다는 게 기운이 빠질 때도 있다. 변우석을 좋아하고 응원하는 마음에 이렇게 매주 에세이까지 쓰고 있지만, 그가 내 글을 읽을 리가 없는 걸. 아니 이런 글이 존재한다는 자체를 모를 텐데. 특별할 것 없는 나는 그저 '통통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여버리는 80만 명 중의 한 명일 뿐, 마치 상감마마 한 명만 하늘로 여기고 살지만 평생 용안은커녕 그림자 한 번 볼 일 없는 구중궁궐 속 무수리가 된 기분이랄까. 아니, 궁녀들은 최소한 같은 지붕 아래 있기라도 하니까 그녀들의 처지가 나보다 나을 수 있겠다.


 그래도 조선시대 궁녀들은 변우석이라는 존재가 세상에 나오기 전 사람들이니 내가 더 나은 건가? 최소한 변우석과 같은 시대 속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살고 있으니까? 이런 황당무계한 생각까지 하게 만들다니 변우석이라는 존재가 내게 정말 특별하긴 한 모양이다. 이토록 내게 큰 존재인 그의 팬으로서, 비록 그가 나의 본명은 모를지라도, 그가 아는 이름 '통통이'로라도 계속 살아가야지 어쩌겠나. 내가 무슨 힘이 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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