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팬으로 살아가다 보면, 좋아하는 스타의 개인적 관심사까지 끌어안게 되는 것이 필연적 과정이다. 변우석이라는 배우에 푹 빠지면서 그가 등장하는 영상이며 인쇄매체를 가리지 않고 파헤치다 보니, 그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연기한 캐릭터뿐 아니라 인터뷰나 리얼리티 프로그램 등을 통해 인간 변우석을 만나는 기회가 생긴다.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역할이 아니라 변우석 개인으로 등장하는 매체를 통해 그의 취향이나 생각을 종종 접할 수 있고, 또 이에 서서히 물들어 간다.
"어나더 13, 시향해 볼 수 있나요?"
변우석이 평소 사용한다는 향수의 이름을 접하자마자 해당 향수를 파는 곳으로 달려가는 나. 집에 이미 쓰던 향수가 있는데도 너무 궁금해서 기어코 시향까지 해본다. 킁킁. 평소 그에게서는 이 향이 나는 건가. 내가 기존에 자주 사용하던 화사한 꽃잎 향이나 상쾌한 허브 계열 향과는 사뭇 다른 낯선 향이 콧속으로 스민다. 첫 느낌은 언뜻 화려하지 않고 너무 은은한가 싶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잔향이 점점 진해지는, 출구 없는 매력의 소유자 변우석을 닮은 향이다. '포근하게 감싸 주는 향'이라는 직원 분의 설명을 듣자, '변다정'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따뜻한 그의 표정이 절로 떠오른다.
점심시간을 마무리하는 커피 한 잔, 아메리카노 아니면 카페라테 둘 중 하나였던 나의 선택지에는 최근 '꿀메리카노'라는 메뉴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커피를 잘 마시지 못한다는 변우석이 특정 카페의 꿀이 들어간 아메리카노 메뉴를 마신다는 얘기를 듣고 냉큼 따라서 주문해 본다. 내 입맛에는 원두가 쓰게 느껴져서 잘 이용하지 않던 카페였는데, 변우석을 따라 꿀이 들어간 커피를 마셔보니 원두의 쓴 맛이 느껴지지 않아 나름 괜찮다.
그가 자주 간다는 장소나 좋아한다는 음식, 걸치는 옷이며 가방, 폰케이스까지 모두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평소 패션에 그다지 관심이 많은 편이 아니라 처음 들어보는 브랜드인데도 그가 자주 이용한다고 하면 괜히 온라인스토어를 검색해 보며 맞지도 않을 옷들을 뒤지고 다니기도 한다.
변우석의 취향 중 백미는 이런저런 채널을 통해 알려진 그가 좋아한다는 노래들. 나보다 훨씬 열정적인 팬들은 그 노래들을 모아 플레이리스트로 공유하기도 한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음악은 이어폰만 있으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그의 취향을 공유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 O.S.T. 에서 변우석이 직접 부른 노래도 수도 없이 들었지만, 그의 추천곡을 듣는 건 또 다른 설렘을 준다. 그는 언제, 어떤 순간에 이 곡들을 들었을까, 이 노래의 어떤 부분이 그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줬을까, 혹시 그도 나와 같은 시간, 이 노래를 듣고 있지는 않을까,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변우석을 떠올리는 낭만 가득한 시간.
변우석의 추천곡 리스트로 돌아다니는 노래들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장범준의 '잠이 오질 않네요'. 평소 장범준을 좋아해서 그의 곡을 자주 들었는데도 희한하게 이 곡은 처음 들어본다. 내가 자주 접했던 장범준의 노래는 담백한 창법을 주로 썼는데, 이 곡은 갈라지는 듯한 목소리가 애절한곡이라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제목처럼 잠 못 들고 뒤척이는 밤에 들으면 더더욱 깊숙이 귓가에 스며드는 노래다.
처음 들어보는 가수 권진아의 '운이 좋았지'라는 노래도 잔잔한 곡인데 가사를 찬찬히 음미하면 가슴 한 구석에 아릿한 아픔이 몰려온다. "나는 운이 좋았지/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어려운 이별을 한다는데/
나는 운이 좋았지/말 한마디로 끝낼 수 있던 사랑을 했으니까" 갑작스러운 이별을 맞이한 당혹스러움을 운이 좋았다고 표현하는 역설적인 가사가 슬픔을 배가시키는 노래다. 변우석과드라마에서 절친으로 호흡을 맞춘 가수 겸 배우 이승협이 그룹 엔플라잉의 리더로서 만든 노래들도 하나씩 찾아 들으며, 그가 이렇게 시적인 가사의 좋은 곡들을 많이 만들었구나 감탄하며 좋아하는 아티스트 목록이 늘어나는 기쁨도 맛본다.
이 세상에 훨씬 전부터 존재했지만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상품과 노래들. 마치 내가 뒤늦게 발견한 배우 변우석처럼, 내가 모르고 있던 사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나름의 자리를 잡고 있던 것들, 그러다변우석의 마음에 들어와 그의 취향으로 자리 잡은 것들. 좋아하는 스타 덕분에 시도해 보지 않았거나 존재조차 몰랐던 것들을 경험해 본다는 건 그의 세상을 함께 들여다보는 듯한 두근거림을 준다. 나이가 들면 더 이상 재미있는 것도, 세상에 기대할 것도 없다며 만사에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던 내가 최근 두 달 사이 변우석으로 인해 매일같이 새로운 세상을 설레는 마음으로 만나고 있다.
그로 인해 오늘도 나를 둘러싼 세상은 한 발짝씩 더 넓어지고 있다.너는 그런 사람이야 우석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