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개봉작인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에는 오래도록 회자되는 명대사가 나온다.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상대방에게 달콤한 말을 열 번 건네는 것보다 훨씬강력한 단 한 마디의 찬사.
당신은 내가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어요. (You make me wanna be a better man.)
나라는 사람을 통째로 변화시킬 정도로 당신은 내게 있어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말, 게다가 내 삶을 좋은 방향으로 안내하는 긍정적인 힘을 갖고 있다는 고백이야말로 진정 로맨틱하지 않나.
개봉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가슴을 떨리게 하는 이 영화 대사처럼 좋아하는 누군가로 인해 생긴 소망, 나 자신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배우 변우석의 팬으로 살면서 요즘 느끼는 심정이다.
<선재 업고 튀어>를 보고 변우석의 외모와 류선재 캐릭터의 매력에 처음 빠졌을 때만 해도 그저 '와, 나도 드라마를 보고 좋아하는 사람이 생길 수가 있네?' 하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멋진 외모를 가진 스타를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건 인지상정. 그렇게 그를 향한 팬심은 '딱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연예인'을 발견했다는 단순한 기쁨에서 출발했다.
그러다 이미 본 드라마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고 또 보고, 변우석이 등장하는 방송 인터뷰며 과거 영상들까지 찾아보는 등 그를 향한 덕질이 길어지면서 단순히 '저 사람은 어쩜 이리 멋있지'의 수준이 아니라 '저렇게 멋진 배우에게 걸맞은 팬이 되어야겠다'라는 마음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키가 문짝만 하다고 '문짝남'으로 불릴 정도로 남달리 큰 키에 대조적으로 작은 얼굴, 아무리 연예인이라고 해도 너무나 비현실적인 그의 신체비율을 보고 있노라면, 언젠가 그를 마주치는 날이 오더라도 온갖 나태의 흔적이 그대로 남겨진 이 몸뚱이가 부끄러워서 그의 옆에 갈 수나 있을는지 모르겠다. 어디를 가나 눈에 띄는 축복받은 외모를 갖고 태어난 그도 매일같이 운동을 한다는 소리를 들을 때면, 개선이 시급한 몸을 갖고 있으면서도 운동은커녕 소파만 보면 드러눕기 바빴던 나는 뜨끔해진다. "저렇게 이미 훌륭한 몸을 가진 변우석도 열심히 운동을 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게으름을 피우고 있지?" 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 오죽하면 군대에서조차 등을 벽에 대고 자세 교정을 했다는 얘기까지 들릴 정도로 자기 관리의 역사가 싶은 변우석이 아닌가. 이런 사람의 팬이 늘어져 있으면 도리가 아닌 것 같아서 천근만근 같은 몸을 일으켜 홈트도 주섬주섬 따라 해 보고, 스트레칭 영상도 따라 해 보고, 뭐라도 하게 된다.
일하다가 스트레스받는다는핑계로 과자를 집어먹던 손도, 변우석이 과일을 즐겨 먹는다는 소리를 듣고는 멈칫해서괜히 수박을 자르고 회사 가는 길에는 사과를 간식으로 챙긴다. 모델 출신인 변우석처럼 어느 날 갑자기 비율 좋은 몸으로 변신할 수는 없겠지만 일반인의 기준에서 건강하고 보기 좋은 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간헐적 단식도 시작했다. 살을 빼고 싶어서 전에도 몇 번 시도한 적이 있지만 탄수화물에 워낙 길들여져 있던 몸이라 그런지 허기를 못 견뎌서 계속 실패했는데, 이번에는 한 달째 유지하고 있다. 내 최애 배우처럼, 자기 자신을 멋지게 관리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외면적인 부분뿐 아니라 내면의 나도 좀 더 채우고 싶다는 마음이 강렬하게 드는 요즘이다. 덕질을 행복하게 이어가기 위해 필요한 돈을 벌어야 하니까 회사도 성실하게 다녀야 하고, 비록 변우석이 나의 존재를 알지는 못하지만 그의 자랑스러운 팬이 되기 위해 내 삶을 더 풍부하게 가꾸고 싶다는 열망이 화르르 불타고 있다.
이렇게 변우석이 내 마음속에 불어넣은 크고 작은 움직임은 과거 연애할 때 남자친구에게 잘 보이고 싶고 예뻐 보이고 싶었던 마음과는 확연히 다르다. 과거 연애시절의 마음은 순전히 상대방에 초점을 맞춰 그에게 좀 더 예쁘게 보이면 어떻게 해야 할지, 그의 맘에 드는 사람이 되려면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할지 고심했다면, 덕질을 시작한 후 생긴 마음은 좀 더 나 자신의 성장에 집중되어 있다.
실제로 만날 가능성도 희박한, 어쩌면 나의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슈퍼스타에게 잘 보이려고 애쓴다는 건 애초에 필요도 없고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다. 그저 나 스스로 훈장처럼 만들어 건 변우석의 팬이라는 이름으로, 반짝반짝 눈부신 내 배우처럼 나도 내 자리에서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비록 그의 실제 모습이나 인성이 방송에 비친 모습과 전혀 다를 수도 있지만,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열심히 자기 관리하고 본인의 커리어를 성실히 쌓아가며, 가족과 팬을 아끼고 배려하는 바로 그 변우석처럼, 나도 그렇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그의 팬이니까.
그저 바라만 봐도 좋은 사람, 일상 속에서 매일같이 내게 행복을 주는 이 사람에게 나 역시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