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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Jan 11. 2024

[프롤로그] 나는 모두에게 미안한 사람

친정부모님께 아이를 맡기는 워킹맘은 항상 유죄

‘황혼에 찾아온 육아 스트레스’, ‘손주 돌보느라 병드는 노년’……맞벌이하는 자식을 위해 손주를 돌보는 조부모와 관련된 부정적 기사가 눈에 보일 때마다 움찔움찔 몸도 마음도 움츠러든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벌써 20년, 그중 벌써 절반의 세월을 워킹맘으로 살았다. 아이를 낳은 지 80일도 되지 않아 회사에 복귀했을 때부터 도움을 주신 친정 부모님은 손주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지금도 여전히 육아에 동참하고 있다.


“회사 나와있는 동안 아이는 누가 봐줘요?” 

아이가 있다고 하면 흔히 받는 질문, 나는 쭈뼛쭈뼛하며 대답한다.

“아……부모님께서 도움을 주세요.”

그러면 돌아오는 답변은 항상 똑같다.

“아이고, 힘드시겠네.”


체력과 시간을 갈아 넣는 과정이 수반되는 육아의 특성상, 연로하신 부모님께 본인의 아이를 맡기는 건 늘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 별 탈 없이 자라 제 밥벌이하는 딸이었던 나는 어느 순간 갑자기 불효녀 딱지를 달았다. 자식들 다 키워 놓고 겨우 본인 인생을 살려하는 부모님을 집구석에 다시 묶어 놓는 고약한 딸, 안 그래도 체력적으로 버거울 나이의 부모님을 골병들게 만드는 불효 막심한 딸이 되어버렸다. 워킹맘들은 본인이 아이를 전적으로 돌보지 못한다는 이유로 늘 자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일종의 원죄의식이 있는데, 거기에 더해 아이를 돌봐주는 부모님에게도 늘 죄책감이 느껴졌다.


같은 워킹맘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도 본의 아니게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많다. 양가 어른 누구도 육아에 도움을 주실 환경이 아니라서 어린이집 종일반, 시터 고용, 학원 뺑뺑이 등의 단계를 밟아가며 발을 동동 구르는 ‘육아 독립군’들에 비하면 나는 너무 안온한 일상을 보내는 셈이니 힘들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다. 방학 때마다 아이를 맡길 곳을 찾아 각종 학원 캠프를 알아보느라 바쁜 워킹맘 동료들의 고민에 비하면, 부모님이 평소보다 긴 시간 아이를 봐주셔야 해서 죄송하고 걱정되는 나의 마음은 사치다.


전업주부인 지인들을 만날 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나도 부모님이 돌봐 주셨으면 일을 그만두지 않았을 텐데, 봄봄 님은 좋겠어요.’라는 말을 들으면, 이렇게 좋은 조건에 있는 내가 불평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입을 다물게 된다.


워킹맘 세계에서 나는 늘 난이도 하 레벨을 유지하는 사람이랄까. 부모님과 함께 하는 육아의 장점을 얘기하면 나 좋자고 연로하신 두 분을 희생시킨다고 지탄받을까 봐, 고충을 얘기하면 '호강에 겨운 양반계집' 취급을 받을까 봐 쉽게 꺼내기 힘들었던 우리들의 육아 이야기를 조심스레 펼쳐보고자 한다.


독자 여러분, 부디 아무 편견 없이 들어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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