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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Jan 25. 2024

엄마,  원래 엄마 되기가 이렇게 어려워?

엄마와 나의 나이 차이는 딱 30세. 계산하기 편해서 엄마 나이를 헷갈릴 일이 없는 동시에 엄마가 날 늦게 낳았다는 걸 항상 상기하게 되는 숫자였다. 엄마는 20대 중반에 결혼하셨지만 몇 년간 아이가 생기지 않아 당시로서는 늦은 나이인 31세에 나를 낳으셨다.


엄마는 딱히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임신이 되지 않았는데, 기간이 길어지자 ‘나는 임신이 어려운 체질인가 보다’ 하고 포기했을 때쯤 갑자기 뱃속에 나를 품게 되었다고 한다. 어릴 때 그런 말을 들으면 혹시 날 입양한 게 아닐까 생각해 본 적도 있지만, 아빠와 나의 외모가 거푸집 수준이었고 엄마의 체질과 성향을 그대로 물려받았기에 내가 입양되었을 확률은 제로였다.


어릴 때는 내가 데려온 애가 아닐까 의심했다면, 결혼하고 난 후엔 나도 엄마를 닮아 임신이 잘 안 되는 거 아닌가 하고 걱정했다. 늘 쉽게 지치고 힘들어하던 엄마처럼 나도 체력이 약하고 잔병치레가 잦았던 탓에, 엄마의 전철을 밟아 임신이 수월하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이 있었다. 나보다 더 늦은 나이에 결혼한 사람들도 느긋이 신혼을 즐기는데, ‘아이를 많이 낳고 싶다'는 소망을 이루기 힘들 것 같아 초조했던 나는 애꿎은 임신 테스트기만 계속 사다 날랐다. 그리고는 테스트기에 나타난 냉정한 한 줄에 무너져 울고불고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이건 누가 봐도 명백한 임신이에요. 4주네요.


고민 끝에 난임 상담을 하러 방문한 병원에서 이런 말을 들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임신 테스터에서 두 줄을 보기도 전에 병원에서 임신 소식을 듣다니! 난임 시술 상담하러 온 병원에서 아기를 가졌다는 말을 들을 줄이야! 너무 극적이라 드라마 속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그간 마음을 졸인 시간들을 한꺼번에 보상받는 기분에 병원 근처 식당에서 남편과 맛있는 식사를 하고 걱정하시던 부모님께 전화해서 마음껏 자랑하며 행복에 들떴다. 기쁨에 들뜬 한 주가 지나고, 체크 차원에서 다시 병원에 들렀을 때 이번에도 드라마처럼 상황이 급반전되었다.


“아기집이 보이지 않아요.”


임신 진단을 내려줄 때만 해도 그렇게 사람 좋아 보이던 의사 선생님이 갑자기 냉혈한으로 보이던 순간이었다. 그 후 병원을 방문할 때마다 듣는 진단은 점점 비수가 되어 나를 계속 찔렀다.


"아직도 아기집이 안 보이네요. 좋은 양상이 아니에요."


 "아무래도 정상적 임신이 아닌 걸로 보여요. 다음 진료 때 한 번 더 볼게요."


"수치를 보면 전형적인 자궁외 임신입니다. 좀 더 지켜보죠.”


점점 절망적으로 변해가는 진료내용, 그러나 계속 진단명이 확정되지는 않은 상태에서 피검사 한 번 더, 초음파 한 번 더...... 마음이 바싹바싹 타는 하루하루가 계속 흘러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직 모르는 거야’를 되뇌며 희망을 품었다가, 지금까지의 검사 내용들을 복기하며 이번에 아기엄마가 되는 건 틀렸다고 절망하며 감정의 널을 미친 듯이 뛰었다.


숨이 막히고 가슴을 죄는 듯한 통증에 밤에 자주 깨고, 사소한 증상만 느껴져도 임신과 연관이 있나 싶어 검색창에 틀어박히다시피 보내는 날들이 쌓여가고 있던 어느 날의 오후, 잠깐 까무룩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나는 마트로 보이는 공간에 홀로 있다가 문득 어여쁜 여자 아이를 보았다. 눈이 크고 순하게 생긴 그 아이는 에스컬레이터를 탄 채 빠른 속도로 내려오고 있었고 나는 바로 옆에서 그 아이와 반대 방향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내려가는 아이와 올라가는 내가 찰나의 순간 마주쳤다가, 예쁜 눈망울의 그 아이가 너무나 빠른 속도로 나를 지나쳐가고 나서야 깨달았다.


내 아이야.


붙잡아야 했어.
내 아기인데.


흠칫해서 뒤를 돌아봤을 때 이미 내려가버린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아이와 엇갈린 채

멈출 수 없는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싣고 한없이 올라가며 흐느끼다 잠에서 깼다.


울면서 깬 나는 영문도 모르는 남편을 붙들고 짐승처럼 꺽꺽대며 울부짖었다.

“내가 놓쳐버렸어. 아기가 진짜 죽었나 봐. 다 내 잘못이야. 내가 놓쳤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남편 앞에서 나는 가슴을 치며 ‘내가 놓쳤버렸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며칠 후부터 나는 몸에서 엄청난 피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하혈이 지속되다가 갑자기 몸 아래쪽이 뽑히는 듯한 통증과 함께 생전 처음 보는 형태의 주먹만 한 핏덩어리를 쏟았다. 저게 내 아기인가 싶어 변기 물을 내리지도 못하고 화장실 바닥에 쭈그려 앉은 채 오열을 했다. 그 후 찾은 병원에서 아기는 내 몸에 머물다 간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완전히 떠나버렸다는 걸 확인했다. 의사는 '다행히', '깨끗하게' '자연적으로' 유산이 되었다고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된다 위로해 주었지만, 그토록 기다렸던 아이가 떠난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현실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졌다.


그때 꿈에서 조금만 더 빨리 그 아이를 발견했다면, 에스컬레이터를 건너뛰거나 역방향으로 마구 달려 아이를 잡아 꽉 끌어안았다면 내게 기적은 일어났을까. 손 한 번 닿지 못한 채 영원히 놓쳐버린 그 아이의 환영에서 벗어나는 데는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불안정한 심리 상태로 부모님을 만나면 큰 걱정거리를 드릴 것 같아 친정과 연락도 거의 끊다시피 했던 시절, 매일 마음속으로 엄마를 찾아가 어린아이처럼 울곤 했다. “엄마도 나 가지기 전에 이렇게 힘들었어? 원래 엄마 되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거야?”라고 되뇌며.



('우리의 찬란한 황홀육아'는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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