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단 한 가지의 초능력을 줄 테니 골라 보라고 한다면, 현재의 기억을 그대로 간직한 채 내가 원하는 과거의 시점으로 돌아가고 싶다.
웹툰, 웹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회귀 능력이 내게도 발현되었으면 하고 자주 바란다.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웹툰 원작의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 줘>도 여주인공 박민영이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모조리 기억에 담은 채 10년 전으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본인이 더 행복해지는 방향으로 인생을 돌리기 위해 과거와 똑같이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예전과 전혀 다르게 대응한다.
나 역시 10여 년 전으로 세월을 되돌리고 싶다. 아이가 생기지 않아 괴로워했던 시절, 그토록 고대하던 아이를 순식간에 잃고 몸부림쳤던 그때, 출근 전 새벽같이 난임병원을 찾아 첫 진료를 기다리며 몸을 와들와들 떨던 날들, 그리고 기적처럼 다시 찾아와 준 아기를 또 잃을까 봐 노심초사했던 그 하루하루 속으로 돌아가고 싶다.
불안함과 두려움, 우울함 등 온갖 부정적 감정에 매몰되어 있던 그때의 바보 같았던 내게 속삭여주고 싶다.
그렇게 애태우지 않아도 괜찮아.
너에게도 조만간 엄마가 될 기회가 주어질 거야,
지금은 남편과 둘만의 시간을 충만하게 보내보렴.
비록 꿈에서 본
눈이 큰 사랑스러운 여자아기는 하늘로 갔지만,
다른 아가가 너에게 찾아올 준비를 하고 있단다.
난임병원 문을 나서 회사로 가는 길에
유난히 남의 아기들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는 이유로 눈물짓지 마, 하루종일 나만 봐달라고 칭얼대는 너의 아기가 찾아온단다.
천신만고 끝에 얻은 아기가 잘못될까 봐
매 시간 매분 배에 온 신경을 집중하며
유산 증상을 검색하는 짓 당장 그만둬.
엄마아빠와 달리 활력 넘치고 에너지 감당하기 힘든 건강한 아이가 태어날 거야.
거듭되는 임신 실패와 유산으로 황폐해져 있던 나는, 다시 아이를 품었을 때 기쁨보다도 또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불안이 너무 컸다. 보통 12주 정도면 안정기라고 하지만 출산이 임박해서 아이를 잃는 케이스들도 봐서 임신에는 안정기라는 건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잦은 배뭉침과 조산기로 입원을 반복하며 신경이 한껏 날카로워져 임신 기간 내내 날을 바짝 세우고 있었다.
퇴사를 할까도 몇 번 생각했지만 아이가 태어나면 돈은 더 필요할 텐데 대책 없이 그만둘 수도 없고, 되도록 몸을 움직이지 않도록 주의하며 사무실에서 업무를 볼 때도 의자를 최대한 젖혀가며 일했다. 평일을 그렇게 조심조심 버티고 주말이면 친정을 찾아 누워 지냈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조부모육아가 시작된 셈이다.
그때의 나는 그 시절이 얼마나 귀하고 행복한 시간인지 느끼지 못했다. 아가가 뱃속에서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는 과정을 오롯이 즐기지 못하고 노심초사하며, 열 달을 이렇게 애태우면 말라죽을 것 같다고 외치며, 제발 지금 눈을 감았다 뜨면 내 옆에 건강한 아기가 누워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뱃속이 투명하게 비쳐서 태아가 무사히 잘 있다는 걸 실시간으로 볼 수 없으면 안심이 안 된다고 스스로를 못 살게 굴었다.
비록 연세가 있으셨지만 지금보다 훨씬 젊고 건강한 우리 엄마아빠를 매주 만날 수 있고, 임신한 딸 위해 온갖 좋은 재료 다 동원한 엄마의 밥상을 당연하게 받았던 그 호사스러운 날들, 깨끗하고 포근한 이불에 몸을 감은 채 몇 시간이고 누워있어도 아무도 날 찾지 않는 고요한 시간들. 누워있다 보면 이불을 뚫을 기세로 태동의 진면목을 보여주던 뱃속 아가. 그 모든 순간들이 얼마나 큰 복이고 특권이었는지, 그 시절이 얼마나 뼈저리게 그리울지 그때의 나는 하나도 몰랐다.
[임신 중 친정에서 찍은 사진. 지나고 나니 참 행복했던 그 시절]
10년 전의 나를 안타까워하고 있는 지금의 나도, 미래에서 보면 또다시 어리석은 과거의 나겠지. 여전히 나의 부모님과 함께 때로는 기쁘게 때로는 힘들게 아이를 보며 일을 하는 이 날들이 또 다른 아름다운 나날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