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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봄 Jun 08. 2024

여자라서 약해 보이지 않을까 걱정하지 마

밀리터리 시크릿 03

"혹시 부대원들이 여자 소대장이라고 얕잡아 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일부러 걸음걸이도 팔자로 크게 걷고, 말도 건들거리면서 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예전에 미국 이민 가서 살 때 강하게 보이려고 일부러 옷도 크게 입고, 말할 때도 욕을 섞어서 하고, 걸음걸이도 크게 하고 했다고 하잖아요. 스웩~~~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런 습관이 몸에 베여서 지금은 고치고 싶은데 잘 안 고쳐져서 속상해요."


"저는 목소리가 작고 가는 편이에요. 말을 빠르게 하는 편도 아니에요. 일부러 이쁘게 귀엽게 보이려고 그러는 건 절대 아니고요. 여자도 변성기가 있다고 하는데 그런 게 없었는지..... 어린아이 목소리 같다고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군인이 그래서 되겠냐고 고쳐야 한다는 말을 듣기도 했어요. 그래서 목소리도 크게 내고 강한 어투로 말하려고 목소리 톤을 낮추어 말하려고 애쓰다 보니까 말하는 것 자체가 좀 부담스럽게 느껴져서 편하게 말을 못 하겠어요. 예전부터 저를 알던 사람들은 화났니? 안 좋은 일 있어? 이런 질문을 하더라고요. 에휴"


"옷 입는 게 좀 신경 쓰여요. 여자와 남자는 기본 체형이 다르잖아요. 걸음걸이도 좀 다르고... 아무래도 남자들이 많은 조직에서 생활하다 보니 옷차림에 신경을 쓰게 돼요. 옷 색깔도 검은색, 회색을 찾게 되고, 몸에 붙는 옷은 아예 생각도 못하죠. 가능하면 헐렁하게 입어요. 요즘 색깔도 다양하고 디자인도 예쁜 운동복이 정말 많은데 그런 옷은 입어도 되나 고민이 돼요. 전투복도 실 사이즈보다는 조금 더 큰 사이즈를 입게 돼요. 그러다 보니 옷 사이즈에 점점 몸이 맞춰지는 것 같아요. 하하하"


"대학 다닐 때까지만 해도 여자 남자 이런 거 크게 신경 안 쓰고 자유롭게 살았는데요. 군대 오니까 새삼 여러 가지로 차이가 있다는 걸 느끼게 돼요. 갑자기 남자들만 가득한 곳에 뚝 떨어지니 혼자 외계인이 된 것 같기도 하고 편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좀 힘드네요. 점점 나아지겠죠?"


이 이야기들 속에는 간부의 92%, 병사는 100%가 남성으로 구성된 조직에서 리더로서 그들을 통제해야 하는 여성 초급 간부들의 고충이 숨겨져 있다. 군대는 계급체계가 분명한 조직이지만 여자이기 때문에 얕잡아 보지는 않을까? 목소리, 말투, 체격조건, 행동방식 등 외형적인 모습 때문에 내 계급에 맞는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업무적으로 저평가되지는 않을까? 이 조직에 자연스럽게 동화되지 못하고 물에 기름이 떠있는 것처럼 그런 상태가 되지 않을까? 그런 불안감이 가득 담겨 있다.


많은 남자동료들과 함께 똑같은 훈련을 다 받았고, 교육을 받고 자격을 인정받았고 군 간부로서 새로운 출발을 하고 있다. 동기들과 헤어져서 마주한 부대에서 나는 철저히 혼자이다. 혼자서 새로운 환경과 일에 적응해야 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몸과 마음이 힘들다. 모든 사회초년생들이 겪어야 하는 외로움과 고독감을 경험한다. 거기에 더해서 20년 넘게 살아오면서 굳어진 목소리, 걸음걸이, 말투를 바꾸어야 하고 고유의 특성까지 감추어야 하는 상황에 처해진다면 더욱 힘겨움을 느끼게 될 수밖에 없다.


다른 직장과 달리 선택에 의해 군에 온 사람들과 의무에 의해 들어온 사람들이 공존하는 군대라는 곳은 조직의 문화와 성격이 좀 다르다. 사무실에 나만 제외하고 다 남성인 곳, 그곳에서 내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매 순간 고민이다. 군대에서 여성인력은 아직도 극소수이므로 다수인 남성의 흐름을 따라가야 하는 상황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많은 여성 초급 간부들이 남성들과 비슷하게 보이려고 노력한다. 머리카락도 짧게 자르고, 화장도 거의 하지 않는다. 뒷모습만 보면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이다. 


과연 남성스럽다는 것, 여성스럽다는 것의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가 고민이다.

남성스럽다는 것은 키가 크고, 목소리가 굵고 우렁차고, 근육이 잘 발달해 있고, 힘이 세고, 술도 잘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축구, 농구를 잘하고, 외모 가꾸기에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무던한 그런 것일까? 남성스럽다의 반대로 여성스럽다는 것은 키가 작고, 목소리가 작고, 근육이 발달해 있지 않고, 힘이 약하고, 술 담배를 잘 못하고 축구, 농구에 흥미가 없고, 외모 가꾸기에 관심이 많고 예민한 그런 것일까?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이런 기준이 아주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에 공감하고 계실 것이다. 생물학적인 성별의 차이를 극복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절한 기준에서 차이를 인정하고 사람마다 다른 성향과 특성을 인정하는 태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군대에서 여성이 남성스러운 모습으로 변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강요할 필요는 없다. 다만, 내가 맡은 직책과 임무에 가장 적합한 모습으로 발전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직업에는 그 직업에 맞는 태도가 있다. 상담원은 상담원의 태도가, 영업사원은 그들의 태도가 있다. 태도는 행동방식, 말투, 생각의 흐름 등 많은 것은 반영한다. 직업에 적합한 올바른 태도를 갖추는 것이 그 직업 안에서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기본 바탕을 만드는 것이므로 매우 중요하다. 


군대에서 초급간부는 일선에서 많은 부사관들과 병사들을 직접 대하는 계층이다. 아무래도 현장에서 활동하는 사람들과 많이 접촉해야 하기 때문에 간결하고 정확하고 빠르게 전달해야 한다. 지휘자의 손끝과 눈빛에서 말로는 전할 수 없는 감정이 전달되기 때문에 올바른 태도, 자세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업무를 할 때나 일을 할 때나 목적과 방향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제대로 소통이 되지 않으면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도 있고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수도 있다.


군 조직이 원하는 초급간부의 모습을 만들어 가려고 노력하라고 말하고 싶다. 여자라서 얕보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외형적인 모습을 바꾸려고 애쓰지 말고 말고 내 선택과 밟아온 과정을 믿고 자신 있게 행동하면 된다. 이제 첫 발을 내딛고 있는데 부족한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하나씩 배워간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누군가가 성별을 무기로 공격을 일삼는다면 그 사람은 양성평등의식이 매우 부족한 사람이니 그 사람의 말에 큰 의미를 두지 않다도 된다. 그 사람들이 나를 흔들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엄마 품에서 태어나서 자라났다.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의 90%가 여성이다. 대학 교수들도 약 40%는 여성이니 대부분 교육자들은 여성인 셈이다. 우리 모두는 여성으로부터 태어나고 여성들에 의해 키워진 사람들이다. 


제대로 교육을 받고 자라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성의 지도와 지휘를 받는 것에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여성들과 협업한 경험이 적은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악의적 감정을 가진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도 경험 부족에서 오는 낯섦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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