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멍들고 가슴엔 성취감이 쌓이고

07. 엄마, 나는 이제 두려울 것이 없어요.

by ATHA

"엄마는 얘기했다. 분명 힘들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한다고 했으니까 이제부터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네가 책임지는 거다. 힘들다고 징징거리지 마라. 누굴 닮아서 고집은 세 가지고 암튼 잘하고 와라"


딸이 입영훈련을 받으러 가는 날 한 줌도 안 되는 갸녀린 어깨에 설렘과 즐거움이 가득 담긴 여행용 생존배낭도 아니고, 육체와 정신의 한계를 시험받게 될 5주간의 견딤과 생존의 시간이 담겨있는 더블백을 둘러메고 무게를 이기지 못해 허리를 반쯤 숙이고 한 발짝씩 학교 속으로 사라져 갔다. 꼭 그렇게 센 척, 쿨한 척 말하고 싶었을까? 힘든 시간 견디러 가는 딸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그렇게 톡 쏘아붙이고는 뒤돌아 서서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요즘 군사교육 환경이 많이 바뀌어서 그리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철저하게 정해진 시간표와 매뉴얼대로 진행되는 교육이다. 예전처럼 군기 잡기를 위한 불필요한 행위들은 없다. 그래도 걱정은 된다. 너무 잘 아니까 걱정이 된다. 전투화를 신고 전투복을 입고 총을 메고 달리기는 생각만 해도 무겁다. 참으려 해도 참을 수 없는 눈물과 콧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화생방 실습, 심장이 철컹거리고 어깨가 멍이 들 사격훈련, 내 몸무게 절반의 무게를 짊어지고 걸어야 할 행군까지 그 모든 것들을 다 해 내어야 할 텐데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이겨내야 하는 것 자체가 힘이 들 것이다.


여대생의 여린 손, 어깨, 팔, 다리에 긁히고 찍히는 상처가 생길 것이 눈에 선하니까 남자들과 같이 하는 훈련에서 또 뒤처지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기를 쓰고 달려들 것이 눈에 선히 보이니까 그 과정을 겪어내는 딸의 마음이 어떨지 너무 잘 아니까 쏟아지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엉엉 울었다. 굳이 그 힘든 길을 선택한 딸을 원망하며, 끝까지 말리지 못한 나를 또 원망하며 그렇게 엉엉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입영훈련을 보내놓고 매일 인터넷 편지를 썼다. 장교들 입영훈련 할 때도 병사들처럼 인터넷 편지를 쓴다는 걸 처음 알았다. 요즘은 핸드폰이 다 지급되어서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엄마는 편지는 안 쓸 거니까 기대하지 말라고 말을 했지만 혹시 같이 방을 쓰는 생활관 친구들은 매주 편지를 받는데 편지 못 받으면 기죽을까 싶어 매일 편지를 썼다.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이모들을 총동원해서 편지를 쓰라고 닦달을 했다.


덕분에 매일매일 편지가 가득 쌓여있는 것을 인터넷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잠시 연락이 닿았을 때 온몸에 땀띠가 났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서둘러 연고와 파우더를 사서 소포를 보내주었다. 다른 것은 보내줘도 받을 수 없다는 말에 몰래 보내주면 안 되냐고 물어보았다. 군대 사정 뻔히 알면서 그걸 말이라고 물어보고 있는 내가 참 한심스러웠지만 엄마의 마음은 다 똑같은 거 아닐까?


뜨거운 여름이 마지막 기승을 부리던 때 딸은 돌아왔다.

"돌아온 것을 환영해" 하면서 등을 두드리는데 "아!!!!" 하면서 호들갑을 떨기에

"아프긴 뭐가 아프냐?" 했더니 "등이 까져서 좀 따가워요." 한다.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딸의 등에는 커다란 멍이 들고, 상처가 나서 아물지 않아서 피고름이 맺혀 있었다.

"이게 뭐야? 왜 이래?"

"아! 총을 메고 달리기를 했는데 그렇게 됐어요"

"한두 번 부딪친다고 이렇게 될 리가 없는데? 어떻게 했길래 이 지경이야? 총도 똑바로 못 메냐?"

"그게 총을 최대한 바짝 당겨서 맸는데 등에 밀착이 안 돼서 그런 것 같아요. 남자애들은 덩치가 있으니까 총을 메면 등에 딱 붙는데 나는 아무리 총끈을 조여매도 자꾸 뜨니까 달릴 때마다 덜컹거리니까 멍도 들고 피부가 벗겨졌어요. 어쩔 수 없었어요. 그렇다고 총을 안 메고 뛸 수도 없고"


발 뒤꿈치, 발가락은 다 벗겨져서 딱지가 앉아 있었다. 보는 순간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발은 왜 이래? 신발이 안 맞는 것 같은데? 바꿔달라고 하지 그랬어?"

"전투화는 발에 익숙지가 않아서 그냥 까진 거예요. 새 구두 신으면 까지듯이 똑같은 거죠. 뭐"

"참, 속도 편하다. 남 이야기 하듯이 말을 하냐?"


'아..... 진짜.... 한번 해보라는 말 취소다.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그만둬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것을 꾹꾹 참았다. 겨우 싫은 내색 안 하고 참고 있는 것도 모르고 딸은 신이 나서 훈련받은 무용담을 쏟아냈다.


"엄마, 나는 사격에 소질이 있는 거 같아요. 같이 교육받는 동기들 중에 내가 사격을 제일 잘했어요."

처음에 총알이 날아가는데 와 진짜 그런 큰 소리는 처음 들었거든요. 무섭기도 했지만 자꾸 해 보니까 정말 재미있었어요. 모두 다 명중할 수 있었는데 아쉬웠어요. 다음에는 더 잘할 자신이 생겼어요. 이거 보세요. 탄착군이 잘 만들어졌죠? 역시 나는 사격에 소질이 있는 것 같아요. 놀이공원에 있는 가짜 총은 이제 우습죠."


"화생방 실습도 진짜 재미있었어요. 뭐 다시 하고 싶지는 않지만요. 가스가 엄청 메웠고 나는 생각 없이 있으려고 노력했는데 그냥 눈물 콧물이 줄줄 나오는 거예요. 하하하 약간 기분이 이상했지만 상상했던 것보다는 괜찮았어요. 중간에 뛰쳐나가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그래도 난 끝까지 버텼어요."


"단독군장 메고 경사진 길을 달리기 할 때가 진짜 제일 힘들었어요. 와 이게 그냥 운동화 신고 달리기 하는 거랑은 차원이 다르더라고요. 그리고 남자애들이랑 같이 뛰는데 남자애들이 아무래도 더 잘 뛰니까 처음에는 여자들이 뒤에서 따라갔는데 그게 더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앞에 세워달라고 했어요. 진짜 힘들었는데 동료들이 이끌어줘서 끝까지 할 수 있었어요. 뜀걸음 하면서 동료들이랑 많이 친해졌어요. 아무래도 달리기는 더 많이 연습을 해야 할 것 같아요"


"공동생활하는 거는 고등학교 때 기숙사 생활을 해 봐서 괜찮았어요. 다른 학교 친구들이랑 같이 방을 배정받았는데 다른 학교에서는 어떻게 교육받는지 이야기도 듣고 훈련받으면서 서로 잘 챙겨주고 해서 친해졌고, 대체로 재미있었고 좋은 시간이었어요."


"엄마! 젤 중요한 건요. 이제 나는 두려울 게 없어요. 내가 원래 간도 작고 막 떨기도 하고 그렇잖아요. 이제는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자신감 충전!! 하하하하"


하하하하 딸의 말을 듣고 있는데 나는 자꾸 헛웃음이 나왔다. 생각보다 너무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해야 지금이라도 그만두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마지막 유혹을 해 볼 텐데 등에 피고름이 맺히고 발등이며 발가락이 다 까져서 피멍이 맺혀있는데도 괜찮았다고 하니까 할 말이 없었다.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딸은 피멍이 들어도 그저 즐겁다. 성취감을 맛보면 되돌아 나올 수가 없다. 힘들어도 그 과정을 겪어낸 후 맛보는 짜릿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음이 아직도 오락가락한다. 이미 노를 저어 앞으로 나가기 시작한 딸을 강 너머에서 바라보면서 되돌아오기를 바라다가 무탈하게 잘 건너가기를 바라기도 한다. 아침저녁 마음이 다르고 시시각각 마음이 달라진다. 어차피 시작한 거 큰 돛배로 갈아타고 힘차게 잘 나아가기를 바라는 것이 더 좋을 텐데 내 마음이 마음같이 움직이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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