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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봄 May 03. 2023

숲에서 치유를...

천천히 걸으니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독감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가까운 남산을 찾아갔다. 계속되는 기침과 나른한 몸 상태로 지쳐가고 있다. 그래도 남산 찾아갈 정도로 기운이 차려지고 있어서 다행이다.


코로나 감염 때 보다 훨씬 더 힘든 이 독감은 그냥 감기라 치부하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 사람을 괴롭히고 있다. 세월 따라 서서히 나이 들어가는 몸의 신호라 생각된다.


아프다는 말이 어색할 만큼 운동을 좋아하지만 먹는 것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었는데 이제는 기운을 채울 운동을 하고 몸에 좋은 음식을 챙겨 먹어야겠다고 결심한다.


삼시 세 끼를 잘 지어먹기만 해도 건강해진다고 하는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어야 말이지.

요리를 즐기는 사람이 젤 부럽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잘 찾아가지 못하는 곳, 은근히 걷기 코스도 많고 직선코스 둘레길 코스 숲길 코스 등 다양한 코스가 뒤엉켜 있어서 길을 잃어버리기도 하는 곳이다.

너무 유명한 관광지라 타워 근처에는 사람들이 엄청 많지만 둘레길에는 의외로 사람들이 많지는 않다. 


발걸음 옮길 때마다 남산이 나의 감기를 가져가버리길 기원하고 산의 정기가 내 몸속에 들어와 나를 정화시켜 주기를 기원한다. 터벅터벅... 발걸음이 무겁다.


돌부리도 없고 스틱도 등산화도 필요 없는 평지를 걷는데 설악산 마등령 고개를 올라가는 것 같다.

2시간이면 도달할 수 있는 코스를 선택했지만 결국 4시간이나 걸렸다. 


가다 쉬다 가다 쉬다 몇 차례나 벤치에 앉아 멍하니 하늘과 숲을 바라본다. 그래도 쉬어 갈 벤치가 있어 다행이다.


나는 산을 좋아한다. 그리고 산을 잘 탄다. (이제는 그랬었다고 표현해야겠다) 하는 일의 특성 때문에 마음이 늘 메여있어서 자주 오르지는 못했지만  유명하다는 큰 산은 다 가 봤다. 정상 정복을 목표로 무박 16km 이상의 산행을 즐겨했었다. 산에서의 1km는 지상에서의 4km와 맞먹는다.


휴가를 내고 금요일 저녁에 설악산으로 가서 새벽 3시쯤부터 걷기 시작해서 토요일 4시쯤 하산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식이다. 일과 가정, 내 맘의 갈증해소 세 가지를 동시에 해소시키는 젤 좋은 방법이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다리는 무의식적으로 움직이고 거의 달리듯 걷는 그 순간의 짜릿함을 즐겼었다.


지금은???

1. 못한다

2. 안 한다.


둘 다 정답이다.


그래도 큰 산을 오르는 로망은 아직 가슴에 남아있다. 꼭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해 보리라는 로망...

요즘 같아선 불가능할 것 같지만 회복되면 또 로망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어쩔 수 없이 느릿느릿 걸어가는 남산길에서 아주 멋진 광경을 보았다. 나도 모르게 셔터를 눌러버렸다.

남산 계곡길 나무아래 평평한  바위에 앉아서 책을 읽고 계시는  소녀를 보았다. 적당한 바람, 모처럼 맑은 하늘, 따뜻한 햇살, 지저귀는 새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모든 것이 완벽한 그곳에서 책을 꺼내든 아주머니의 뒷모습이 너무 사랑스럽다. 소녀 같다. 꿈꾸는 문학소녀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고 서 있었다.

느린 발걸음이 가져다준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내가 달리지 않으면 세상이 멈추는 줄 알고 살아왔다. 지금도 달려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 주말에 낮잠 자는 시간이 아깝고 흘려보내는 순간이 허용되지 않는다.

많이 예민하고 조급하고 생각이 많다.


독감은 내게 또 다른 생각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목표를 향해 돌진해 가는 경주마의 마음은 이제 그만 내려놓아도 되지 않을까? 앞만 보게 만들어진 안경을 벗고. 빨리 가도록 설계된 시스템을 벗어나서 조금 여유로운 마음으로 시선으로 내 삶을 살아보아도 좋지 않을까?  독감이 몸에서 다 달아나면 또 회귀본능으로 언제 이런 생각을 했는지 조차 잊을지도 모르지만 천천히 걷고 천천히 바라보는 세상에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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