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의 아들 1

03화. 스물두 살 너에게

by ATHA

취사장에서 수현이랑 명렬이랑 한판 붙었답니다. 아.. 이 새끼들 대낮에 미쳤나? 요즘 이것들이 간뎅이가 쳐 부어가지고 아.. 미친 새끼들... 아주 돌았구먼..


장중사가 욕인지 말인지 구분 안 가는 말을 마구 내뱉어내면서 취사장으로 씩씩거리면서 올라가고 있었다. 평소에도 말이 빨라서 잘 못 알아듣는데 욕까지 섞어대니 무슨 말인지 더 못 알아듣겠다. 그 다급한 와중에 귀에 꽂히는 이름 수현이.


수현이는 막내 취사병이다. 하얀 피부에 작은 체구 눈이 아주 까맣고 눈썹이 진하고 또렷한 친구였다. 한 줌 밖에 안 되는 갸녀린 어깨와 얇은 허리는 어린 여자아이를 연상시킨다. 짧은 머리카락만 아니면 누가 군인이라고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막내 취사병의 일과는 너무 고달프다. 새벽 4시 즈음 제일 일찍 일어나서 취사장 솥단지 화구에 불을 피우고, 물을 한가득 솥에 부어서 끓인다. 물이 끓는 동안에 화구 앞에서 꾸벅꾸벅 조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다.

선임들이 요리 준비를 하는 동안 생기는 각종 쓰레기 처리, 취사도구 정리, 청소를 자발적으로 알아서 하고 요리가 끝나면 배식할 준비를 한다. 병사들의 식사가 시작되기 전에 잽싸게 식사를 하고 다른 병사들이 식사를 하는 동안에는 배식하면서 생기는 취사도구들을 또 씻는다.


일주일에 세 번 부식이 들어오는 날이면 더 정신이 없다. 부식이 없는 날과 취사의 순서는 똑같고 메뉴도 똑같은데 양파 껍질 벗기기, 마늘 껍질 까기, 생선 대가리 꼬리 쳐내고 내장 빼내서 다듬기까지 해야 한다. 또 있다. 멸치 대가리 떼고 똥 발라내기, 감자 당근 껍질 벗기기도 있다. 고작 150명 식사 준비에 양파는 까도 까도 줄어들지 않고 초보들은 눈 비벼서 눈알이 시뻘게진 채 울면서 껍질을 벗기기도 한다.


생선은 진짜 취사병의 주적이다. 북한 김정일(그 당시) 보다 더 무섭다는 생선들.. 얼린 상태로 들어오는 그 사각 덩어리를 내려쳐서 쪼개려다가는 생선이 다 부서져버린다. 흐르는 물에다 잘 녹여서 살살 뜯어낸 다음 생선가게 사장 마냥 고무앞치마를 촤고 두르고 힘차게 대가리랑 꼬리를 쳐내고 배를 갈라 내장을 빼낸다. 그리고 물이 있는 대야에 휙 밀어 넣는다. 족히 한 시간은 더 해야 한다. 고약한 생선 비린내가 진동을 한다. 씻어도 냄새가 가시질 않는다.


멸치 대가리와 똥 제거는 그나마 고급진 일이다. 의자에 편히 앉아서 할 수 있고 주로 식당 안에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꼭 해야 되나 싶지만 이거 제거 안 하고 육수 내면 냄새가 난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막내의 비애는 가장 일찍 나와서 가장 늦게 들어간다는 건데 그나마 그건 괜찮다. 선임이 되면 점점 더 기술적인 일을 할 수 있으니까. 요리하나 담당해 보는 게 소원이다. 셰프는 아니지만 요리는 창작이니까 요리조리 만들어보는 재미기 또 있다.


하지만 취사병 모두의 비애는 씻어도 씻어도 온몸에 베인 짬냄새를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디. 특히 잡일을 도맡아하는 막내는 이상하게 냄새가 더 많이 난다. 생선, 양파, 마늘, 멸치 향기가 골고루 베어서 아주 기막힌 향수가 돼서 피부 속 깊은 곳까지 침투해서 아무리 비누로 씻어도 빨랫비누로 문질러도 대체 없어지지가 않으니 내무실 들어가면 괜히 미안해서 구석에 찌그러져 있게 된다.


지금이야 야채고 생선이고 다 손질해서 취사장으로 들어오니까 그냥 양념만 넣고 조리만 하면 되고 아예 레트로트 식품으로 보급이 되니까 취사병들이 아주 편해졌다. 그래도 기피보직이라 취사병 모집은 늘 정원미달이고 칼도 잡아본 적 없는 아이들이 밥을 하고 있다. 산 낙지를 갖다 바쳐도 그들의 손에서 맛있는 요리로 태어나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수현이는 그 어렵고 힘든 막내 생활을 입 꾹 다물고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 잘하고 있었다. 물기가 마를 날 없는 손은 가뭄에 땅이 갈라지듯이 갈라져서 눈으로 보기에도 따가워 보인다. 집에 있는 바셀린이라도 바르라고 가져다주는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항상 생글생글 웃고 있어서 부대 모든 사람들이 좋아했고 앞으로 취사장을 짊어지고 갈 인재라고 칭찬이 자자했던 수현이었다.


그런 수현이가 그것도 명렬이와 한판 붙었다고?


명렬이는 취사장에서 최고 선임이다. 급양관이 없을 땐 명렬이가 왕이다. 취사병 모두가 그의 말, 손짓, 몸짓 하나하나에 집중했고 까칠해 보이는 외모처럼 까칠하고 다소 거칠었던 그는 간부들도 쉽게 건드리지 못하는 아우라를 갖고 있었다.


수현이가 코피를 흘리며 취사장 바닥에 엎어져 있는 걸 상상하며 나도 뛰어올라갔다


(2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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