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졸업 후 일 년 어머니 일 도우다 입대
아버지 생존해 있으나 연락 안 됨
어머니와 같이 살고 있음. 어머니 직업 무당
직업 무당! 무당이 직업이 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실제로 무당을 본 적이 없다. 다만 우리의 경험을 대신해 주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보아 왔다.
그곳에 있는 무당들은 하나같이 눈이 하늘을 향해 뒤집어져서 흰자위가 검은자위 보다 더 많이 보인다. 눈썹은 얇은 갈매기 날개 모양으로 미간에서 귀를 연결하는 선으로 길고 진하게 그려서 희번덕한 눈을 더욱 날카롭게 보이게 한다. 입술은 사냥감의 가장 맛있는 부분을 한 입 크게 물어뜯고 입에 피를 묻힌 맹수처럼 붉은색을 칠하고 있다. 남녀를 막론하고 유난히 돋보이는 하얗고 긴 손가락에는 옥반지를 끼고 있다.
붉은색 치마에 색동저고리를 받쳐 입고 웃음인지 울음인지 알아차릴 수 없는 얼굴 표정을 지으면서 앉아서 찾아오는 사람들을 사냥감을 바라보는 맹수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어디가 약한 부위인지를 찾아 한방에 쓰러뜨리려는 마음을 감추며...
세상에 모든 무당이 다 똑같이 생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수현이 어머니를 통해 알게 되었다. 수현이 관물함 한쪽에 붙어 있는 사진 속의 어머니는 잠시 들여다 보아도 너무 아름다운 분이었다. 수현이처럼 투명하게 하얀 피부에 선한 눈망울과 수줍은 미소를 띠고 가을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는 코스모스 같이 웃고 계셨다. 무당이라니... 참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궁금했다. 이런 분이 왜 무당이 되셨을까? 하지만 물어보지 못했다. 말하기 힘든 어떤 사연이 있을 것 같아서 수현이가 먼저 말하기 전에는 먼저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
수현이는 흐르지만 흐르지 않고 그 깊은 곳에 무엇이 있는지 잘 드러나지 않는 저수지 같은 아이였다. 늘 희미한 미소를 띠고 있고, 조용한 목소리와 조심스러운 움직임 때문에 대체로 활발하고 목소리 크고 몸짓도 요란한 취사병들 사이에서는 샌님으로 통하고 있다. 그래도 바람에 날려 갈 듯이 비쩍 마른 것 처고는 힘쓰는 일을 곧잘 해서 그나마 취사병들 사이에서 쓸모 있는 막내로 인정받고 잘 적응하고 있는 중이었다.
혹시 그 조용하고 차분한 수현이가 드센 선임들 사이에서 치이지는 않을까 걱정이 많았었지만 다행히도 그런 걱정은 거두어도 될 만큼의 시간이 지났고, 한시름 놓고 있었다.
장중사!! 같이 가자!! 창고에서 취사장으로 올라가는 길이 이렇게나 가파른 오르막이었나 싶을 정도로 가파른 길을 숨을 할딱 거리면서 뛰어올라갔다.
씨발! 무당새끼가 어디서 지랄이야! 야! 니도 신들렸냐? 어? 신들렸냐고! 아.. 이 재수 없는 새끼가 눈 깔아! 야! 이 씹쌔야. 눈 깔라고..
취사장 밖으로 새어 나오는 명렬이의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오늘 애 하나 죽이는 거 아냐? 아! 진짜... 징글징글한 놈들...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구먼... 속으로 욕을 해대면서 한껏 목청을 높여 취사장 문을 치고 들어갔다.
내 눈앞에는 조리실 도구들이 바닥을 뒹굴고 던져진 칼들과 부서진 소쿠리가 보였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시뻘게진 체로 씨발씨발 거리면서 온갖 욕을 해대는 명렬이를 중간 취사병들이 막아서고 있었다.
그리고 수현이, 너무나 편안한 얼굴로 명렬이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거부할 수 없는 눈빛으로..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가 없는 저수지 같은 그런 몸짓으로 온몸으로 그 모든 상황에서 혼자만 벗어나 평화로워 보이는 얼굴로 서 있었다. 그런 수현이를 보면서 명렬이는 더 미쳐서 날뛰고 있었다.
"소대장님! 저 새끼 눈빛 좀 보세요. 좃나 재수 없어요. 아! 씨발!!"
이쯤 되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야!!!!!!!!!!!(있는 힘껏 목청을 높여 소리를 지른다)
이 미친놈들아!!! 정신 차려!! 내가 너네 친구야? 소대장이 왔는데 경례도 안 하고 뭐 하는 짓이야!! 죽을래? 이거 빨리 다 치워!! 딱 30분 준다!"
수현이 한테 무당새끼라고 놀렸다고 했다. 명렬이는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어쨌든 명렬이 뿐 아니라 부대의 모든 병사들이 수현이 어머니가 무당이라는 것을 안다고 했다. 이 작은 공간 속에 24시간을 함께 생활하다 보니 비밀이라는 게 존재하기가 어렵다. 그래도 그건 끝까지 비밀로 지켜지기를 바랐지만 그게 헛된 바람이었던 것 같다.
무당새끼
무당의 새끼라는 뜻일까? 새끼 무당이라는 뜻일까? 어쨌든 우리는 사람의 아이에게는 새끼라는 표현을 붙이지 않는다. 사람 취급을 해 주지 않고 계속 놀려댔다는 뜻이다. 무당 새끼든 새끼 무당이든 수현이가 선택한 것이 아닌데 수현이 어머니가 선택한 것도 아닐 텐데..
아이들 사이에서는 수현이가 신기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했다. 그래서 신기 있는 놈을 건들면 삼대가 재수 없다는 믿음에 의해 입방정은 떨어대도 절대로 수현이를 때리거나 공격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무당새끼라고 많이 놀림을 받았던 수현이는 그런 말 따위에는 더 이상 상처를 받지 않을 만큼 이미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딱 거기까지여야 했다. 무당 새끼! 그 정도였으면 마음 깊은 수현이가 그냥 이해하고 넘어갔을 텐데... 그날 밥하면서 명렬이가 입방정을 떨면서 어머니를 향해 비야냥 거리는 말을 했다고 한다. 우리가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로 부모자식은 건드리지 말라고 했는데 명렬이는 그 입이 방정이다.
아무 말 없이 그걸 다 듣고 있던 수현이가 명렬이에게 다가가서 귀에다 뭐라고 말을 했다고 했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아무도 모든다. 명렬이가 그 말을 듣고 나서 눈알이 뒤집혀서 혼자 날뛰기 시작했다고 했다. 다른 녀석들이었으면 분명 쌍코피가 터지는 상황이었을 텐데 수현이라서 손은 못 대고 성질은 나니까 다 집어던지고 욕하고 난리를 쳤던 거라고 했다.
그 후로도 수현이는 그렇게 희미하게 웃으면서 열심히 요리를 했다. 명렬이는 재수 없는 무당새끼랑 일 못하겠다고 말했다가 중대장님께 되려 욕만 들어먹고 영창 안 가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라는 말에 한풀 꺾여서 조용히 요리를 했다.
아이들 사이에서는 수현이가 그 성질 더러운 명렬이를 말 한마디로 때려눕힌 걸 보면 흑마법이라도 부릴 수 있는 신기 있는 사람이 분명하다면서 한동안 시끌벅적하다가 그렇게 서서히 또 잊혔다. 명렬이가 전역을 하고 수현이가 취사장에서 선임병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서서히 잊혔다. 수현이가 무당의 아들이라는 것도 신기가 있다는 것도 다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사실이고 사실일지도 모르지만...
수현이가 해 주던 달걀 프라이가 생각난다. 힘들 텐데 군대를 왜 왔냐고 되려 나를 위로해 주면서 자기가 해 줄 수 있는 게 프라이 밖에 없다고 나중에 칼 잡으면 볶음밥도 해 주고 야채 들어간 달걀말이도 만들어 주겠다면서 그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다 갈라 터진 손바닥에 내가 건넨 바셀린을 바르며 고맙다고 말하며...달걀프라이 위에 케첩 하트를 그려주던 무당의 아들 수현이...
어쩌면 무당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차라리 그 편이 살기가 편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 조용하고 고요한 평화로움은 그를 지켜주는 신이 항상 함께 있기 때문이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