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캐 정비병, 부캐 사진병

05화. 스물두 살 너에게

by ATHA

그냥 힘듭니다. 다 큰 친구가 눈물을 뚝뚝 떨군다. 고개를 푹 숙이고..

그냥... 선임들도 잘해 주고 간부님들도 좋고, 동기들도 잘해 주는데 그냥 힘이 듭니다. 저도 이런 말을 하는 제가 참 싫은데.. 다른 동기들도 후임병들도 다 잘하고 있는데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게 너무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숨이 안 쉬어집니다... 답답하고... 힘이 듭니다... 힘들다고 말씀드려서 너무 죄송합니다.


힘들다고 말해서 죄송하는 그 말이 너무 가슴이 아프다. 눈물 흘리며 들썩이는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고 무심한 듯 한마디 내던진다... 같이 눈물 흘리기는 창피하니까... 나는 감정이입을 너무 잘하는 편이라서 그냥 누가 울면 같이 운다. 누가 웃으면 같이 웃고 때로는 글을 읽으면서도 영화를 보면서도 많이 운다.


내가 울게 될까 봐 괜히 씩씩한 척하면서 말한다. 야! 울지 마! 다른 애들도 다 힘들다던데? 너만 그런 거 아니야. 그러니까 부끄러울 거 없어. 뭐 하나도 안 힘들고 군대가 너무 좋다는 애들이 몇이나 되겠어? 뭘 하고 싶은지 말을 해봐. 아직 1년도 넘게 남았는데 그동안 뭘 하면 숨이 좀 쉬어질 것 같은지 말을 해봐.


한참을 고개만 푹 숙이고 눈물을 떨구고 있다가 작은 목소리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거부당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사진? 사진을 어떻게 찍어?

제가 집에 사진기 보내 달라고 말을 하겠습니다.

아아... 사진기... 그.. DSLR... 아...


군대는 보안이 중요한 조직이다. 사무실에서의 인터넷 사용이 자유롭지 않고 핸드폰에 사진 기능은 사용할 수 없다. 그리고 허가받지 않은 디지털 장비는 부대 안으로 들여올 수가 없다. 이건 너무 당연한 조치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는 더 통제가 심했으며, 특히나 디지털 장비의 반입은 허가하기를 꺼리는 분위기였다. 부대에 겨우 업무용 디지털카메라 한대가 아주 귀한 대접을 받으면서 금고 속에 보관되어 있었다. 필요할 때 허가를 받고 열쇠를 받아서 금고를 열고 카메라를 쓰고 그걸 또 반납하고 사용일지를 쓰고 있었다. 고장이라도 날 까봐 엄청 신경을 써서 관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현식이가 개인 DSLR 카메라를 부대로 가지고 들어오고 싶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그 고가의 장비를 부대에 들고 와서 사진을 찍고 싶다고... 지금... 울면서... 음... 사진기를 그냥 들여오겠다고 하면 분명 허락을 안 해 줄 것이고, 그렇다고 개인 소유의 카메라를 부대업무용으로 쓸 수도 없고 찍을 때마다 누군가 따라다니면서 보안에 문제가 있는 사진을 찍지는 않는지 지켜볼 수도 없고.. 사진기는 들고 올 수 없다고 말을 할 수도 없고...


그 고민의 끝에 탄생한 것이 우리 부대 전속 사진사 였다.


현식아! 오늘 전입신병 들어오니까 두 시까지 행정반으로 와라.

현식아! 오늘 분대별로 단체사진 찍을 거니까 4시까지 준비해.

현식아! 중대 단체사진 찍을 거니까 공지하고 애들 준비시켜.

현식아! 대대에서 사진 지원 해 달라니까 이따 대대로 가서 사진 찍어주고 와.

현식아! 체육대회 때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애들 사진 많이 찍어줘!


현식이는 본캐 정비병, 부캐 사진병으로 바쁘게 살기 시작했다. 본캐보다 부캐에 더 집중하면서... 신이 나서 사진사 부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사진 찍으러 군대 왔냐는 비아냥거림과 눈총 따위는 아무런 두려움을 주지 않았다. 다행히 구타가 만연하던 시절은 아니었으니 아마도 구타가 일상이었던 시절이었으면 현식이는 화장실에 끌려가서 매일 맞았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현식이는 그까짓 비아냥 따위는 얼마든지 웃어넘길 수 있는 강심장이 되었다. 소중한 부캐 사진병을 지키기 위해서 그 정도쯤이야 감당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식이만 특혜를 준다는 일부 병사들의 투덜거림에는 부대를 위해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내어 놓을 의향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누구든 부캐를 만들어 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누구도 부캐를 원하지는 않았다. 본캐와 부캐를 다 잘해 내기는 힘들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안다. 적어도 현식이만큼 잘해 낼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매달 한 번씩 사진을 인화하러 가는 날 현식이는 정말 날카로운 매의 눈으로 한 달 동안 찍은 사진을 고르고 또 골라서 멋진 사진들만 인화를 맡겼다. 비아냥 거리던 친구들도 자신들의 군생활이 담긴 멋진 작품 사진 하나씩을 손에 쥐고 난 후에는 더 잘 찍어 달라고 부탁을 하기도 했고, 특별히 주말 시간에 병사들끼리 사진을 찍을 수 있게 시간을 주기도 했다. 현식이 덕분에 우리 부대엔 새로운 활기가 솟았다. 꾸벅 졸다가도 현식이가 사진기만 들고 나타나면 갑자기 아주 멋진 군인들로 변하는 바람에 부대 여기저기서 웃음이 가실 줄을 몰랐다.


결국은 본캐로도 부캐로도 인정받은 현식이가 전역하고 나서 우리부대엔 멋진 사진이 사라졌다. 큰 아쉬움이 남는 지점이다. 그래도 무려 150여명의 부대원들이 함께 찍은 사진이 남아 있다. 참 다행이다.


초급간부들과 병사들은 여러모로 취약한 존재다. 이미 자아가 확립되어 스스로 계획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시간들을 역행해서 유아기 때로 돌아가서 다시 성장하는 과정을 겪어내야 한다. 부모를 선택할 수 없듯 부대도 보직도 내가 선택할 수 없다. 대부분 입대 전에 하던 공부나 일들과 관계없는 보직을 맡게 되고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리 똑똑하고 마음이 단단한 친구들도 한동안 힘든 시간을 겪는다.


인간관계는 더 힘들다. 학력으로 보면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 검정고시, 현재 대학생, 대학 졸업 후 고시 준비 중, 해외 유학 중 입대 이렇게 다양한 학력자들이 있다. 그리고 집안 형편도 정말 천차만별이다. 누구네 집에서는 부모님 한 달 용돈이 어떤 집에서는 한 달 생활비이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다 입대한 친구들도 있지만 당장 전역하면 집안의 가장이 되어야 하는 부담감에 매일 잠을 못 자는 친구들도 있다.


이렇게 복잡한 성인 집단은 군대밖에 없다. 이런 복잡한 성인들의 집단 속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군대 내의 환경이 좋아지는 것보다 군대 밖의 환경은 5배, 10배 빠르게 좋아지고 그런 좋은 환경 속에서 살다 온 젊은 친구들이 느끼기에 의무 복무로 와야 하는 군대는 그냥 힘든 곳일 뿐이다.

우리 아버지들은 말씀하신다. 요새 군대는 진짜 편하다 아이가. 아빠 군생활 할 때는 말이지 강원도 양구 산골에서부터 걸어서 어덴지도 모르는 데를 걷고 또 걷고 아이고 징글징글하다 아이가 니 지난번에 근무했던데 있지? 거가 내가 다 걸어서 다니던 길 아이가.. 와... 길 뚫어 농께 어덴지도 모르겠데? 요새는 그래 안 걸리제(그렇게 걷게 하지 않지?) 요새 아들은 그래 걸으라 하면 다 도망가 삘 거다. 안 그렇나? 하도 마이 걸어가꼬 발가락이 터졌는데 그거 멋도 모리고 아프다고 했다가 진짜 죽을 뻔했다 아이가..


우리 삼촌들은 이야기한다. 요새 군대는 진짜 편하잖아! 니도 편하제? 요새는 밥도 잘 나온다면서 요새도 양배추 김치 나오나? 야.. 나는 그게 제일 먹기 싫었다. 똥국에 양념에 살짝 이파리만 담갔다가 꺼낸 양배추 김치에 쌀보다 보리가 훨씬 더 많이 섞여서 풀풀 날아다니는 밥을 또 아낀다고 슬슬 피워서 이게 밥인지 밥알인지 모르게 식판에 담아 주는데 참... 그거 묵고 힘을 어째 쓰니?


우리 선배들은 말한다. 요새 군대가 군대가 아니지~ 외박도 자주 나오고 그런다면서.. 우리는 정기휴가 말고는 부대 밖에 나올 일이 없었다. 나는 휴가 하나 더 얻으려고 부대에서 작업이란 작업은 다 손들고 나갔잖아. 야... 전방에 도로 그거 다 내가 만든 거야.


우리 예비역들이 말한다. 요새 군대는 군대가 아니지~ 핸드폰도 풀어주지, 배달음식도 시켜주지, 월급도 많이 주지, 침대도 있지, PX도 맘대로 쓸 수 있지, 외박도 자주 나오지 너무 잘해줘서 애들이 빠져가지고 군기가 빠졌지 뭐. 우리 때는 절대 안 그랬다 든...


지금 병장이 상병에게, 상병이 일병에게, 일병이 이병에게 말한다.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너네는 왜 그러냐? 요즘... 너무 편해서 요즘 애들은 너무 빠졌다.


오늘은 어제가 되고 내일은 또 과거가 되는 것일 뿐인데.. 그래서 군대가 발전하는 것이 싫다는 것인가? OECD 35개 국가 중 국민소득 10위권에 속해 있는데 군대도 당연히 발전해야지...내 아들이 근무하는 곳은 편리했으면 좋겠지만 지금은 불편해도 참고 견디는게 군대라는 것은 무슨 논리인지... 딸만 있는 나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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