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짧은 여행일기 237

빠통의 파도와 바람에 몸을 맡긴다.

by ATHA

웰컴 투 빠통!

무려 4km나 되는 빠통의 해변길을 끝까지 걸어볼 용기를 내지 못했다. 더위를 느끼지 못할 정도의 시원한 바람과 햇살이 있었다면 한번 걸어볼 만했을 텐데 아침부터 해 질 녘까지 피부가 타들어가듯이 뜨거운 태양아래 잠시 발을 내디딘 모래사장은 '앗 뜨거워'를 연발시키며 저절로 뛰게 만들었다.

학창 시절을 부산에서 보냈고, 부모님이 부산에 살고 계시고, 하나뿐인 동생은 거제도에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바다에 대한 목마름은 없다. 일 년에 세 번 이상은 어디든 바다를 보게 된다. 부산에 내려가면 꼭 해운대를 가게 되고 가끔 거제도도 간다. 그리고 일 때문에 1년 동안 강원도 양양에서 살면서 간성-고성-속초-양양-강릉-삼척-동해까지 이르는 해안의 유명한 해변은 다 가봤다.


빠통해변에 처음 들어서면서 자연스레 입에서 나온 말은 해운대가 더 좋은데? 양양해수욕장이랑 비슷하네였다. 솔직히 실컷 해외까지 가서 잘 놀고 와서 할 말은 아닌 것도 같지만 빠통해변은 그냥 겉으로 보기에 우리나라 해변들과 비교해서 너무 좋다는 느낌은 없었다.

하지만 자연은 그 속에 들어가 봐야 진가를 알게 되는 것 같다. 물속에 몸을 던지고 나서야 빠통해변이 왜 유명한지 알게 되었다. 모래가 너무너무 부드러워서 밀가루를 밟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해안가에서 물속까지 한참을 걸어가도 계속 발이 땅에 닿아서 마음이 안심되었다. 우리나라의 해변들은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발이 닿지 않아서 튜브를 타고 놀아야 하거나 조개껍질이나 암초 같은 것들이 많아서 깊이는 들어가지 못하는데 빠통해변은 한참을 걸어 들어가도 어른의 키를 넘지 않는다. 이렇게 멀리 들어와도 되나 싶을 정도로 들어가서 밀려오는 파도를 온몸으로 맞이하며 진짜 파도타기를 할 수 있었다.


끝없이 밀려드는 크고 작은 파도들에 몸을 맡기고 휩쓸려도 걱정이 되지 않는다. 바닷속이 너무 깨끗하다. 어떤 종류의 파도가 밀려들어도 내 발은 땅에 닿아있고, 내가 파도에 휩쓸려 바닥에 쓰러져도 금세 일어날 수 있다. 내 몸을 다 앞으로 밀어낼 만큼 큰 파도가 와도 일어서면 물은 내 가슴팍 아래에 있었다. 튜브를 타지 않고 먼바다까지 걸어 나가 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파도에 몸을 맡기고 타도를 타는 경험도 처음이었다. 파도는 튜브가 있어야 탈 수 있는지 알았는데 몸이 파도 위에 둥실 떠오르는 기분이 정말 좋았다.

해가 지고 있는 해변은 물이 점점 더 멀어져서 지는 해 끝에 닿을 듯했다. 지는 해를 배웅하듯이 수상 패러글라이딩 하는 사람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보트가 끌어주는 힘을 이용해서 하늘을 잠시 날아보는 것인데 그 길고 긴 해변에 수많은 업체들이 성황리에 영업을 하고 있었다. 시야에 아무것도 거치를 것이 없는 드 넓은 바다를 하늘을 날면서 바라보는 것도 굉장히 기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의 눈을 사로잡은 외국 할아버지... 그 어떤 풍경보다 더 아름다워 보였다. 맥주 한 병을 시켜놓고 나무 그늘 아래 앉아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내가 파도타기를 몇 번 하면서 왔다 갔다 하는 중에도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서 책 한 페이지 읽고, 하늘 한번 보고, 바다 한번 보고, 맥주 한 모금 마시고 그렇게 시원했던 맥주가 따뜻한 보리차가 될 때까지 앉아있었다. 그 조용한 휴식의 순간이 너무 평화로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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