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희의 디카시(5)
벚꽃엔딩이 요란하던 날, 김정숙 선생님의 합평용 과제가 올라왔다. 앗! 어떻게 꽃잎이 아나고가 되었지? 발상의 전환이 조금 낯선 탓에 사뭇 신기했다.
그날 이후,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침 출근길에 마중 나온 벚꽃에서 비린내가 나기 시작했다. 수목원에서 여기저기 흐드러진 벚꽃들이 풍기는 비릿한 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그동안 근무 하면서 한 번도 맡아본 적이 없었던 냄새였다. 스탕달신드롬 같은 증후가 벚꽃을 볼 때마다 재현되었다.
어느 날 열린 창문으로 산화하는 벚꽃 잎이 날려 들어왔다. 비릿한 냄새를 풍기면서 말이다. 볼펜을 꺼내 그 느낌을 끄적거렸다.
꽃의 고향
벚꽃이 고향으로 돌아갔다
비릿한 냄새를 풍기면서
한바탕 계절을 분탕질했다
사람들은 제각기
꽃잎을 싸서 먹거나 마시거나
제 기호대로 계절을 연출하였다
필시 꽃의 고향은 바다 깊은 곳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햇빛의 깊이에 따라 정해진
거리를 헤엄치다가
복사열에 튕겨 올라온 그들이 갈 수 있는 곳은
물의 깊이만큼이나 되는 나무의 높이였으리라
에드워드 포보스는
심해에 생물이 살지 못한다고 했지만
그건 모를 일이다
해마다 어두운 계절을 딛고
환하게 바닷냄새를 풍겨대는 저 꽃잎을
심해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보아라
수천 년 동안 준비한
여리디 여린 꽃잎이 풍기는 자태를
너와 나 사이를 이간질하는 저 교묘한 향기를
살풀이하듯 노트에 끄적여 놓고 나니 그제야 진동하던 비린내가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디카시 한편으로 인해 전두엽에 input 된 강렬한 비린내는 활자로 output 되자 그제야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지금도 벚꽃을 떠올리면 예의 그 비릿한 냄새가 코끝을 스치지만, 정숙선생님의 디카시 <애매한 꽃길>을 처음 접했을 만큼의 비린내는 아니니 그나마 다행이다.
시 한 편, 문장 한편이 그것을 읽는 타인에게는 엄청난 영향을 준다. 그렇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면 그 시는 분명 성공한 것이다.
<애매한 꽃길>을 다시 읽어 보니 시 정말 좋다.
아직도 비린내는 남아 있지만 이 시가 나에게 준 충격이 바로 시너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