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바

영희의 디카시(4)

by 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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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한 내비게이션을 등에 업었다


손주가 안내하는 할머니의 주행 길

꽉 막힌 오후는 푸른 바다가 되었다


연륜이 깊은 나무가 새롭게 트는 싹을 업었다. 속이 빈 나무들이 새싹을 틔워 내는 걸 우리는 종종 만날 수 있다. 체관과 수관을 품은 형성층이 수피에 있기 때문에, 나무껍질만 있다면 언제든 새로운 싹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 코스섬에 가면 히포크라테스의 나무로 알려진 플라타너스, 나무가 있다. 기원전 460년경에 생존했던 히포크라테스 나무라니... 그가 심고 가꾸었단 말인가?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나무 아래서 히포크라테스가 제자들을 가르쳤다 하여 히포크라테스 나무로 알려진 것이다. 그런데 그 나무 아래서 제자들을 가르쳤다면 아마도 그 나무는 2.500년이 훨씬 넘은 나이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 당시에도 무성한 가지가 그늘을 만들었을 테니 말이다.


활엽수들은 후손을 만들어 내는데 거침이 없다. 할머니가 죽고 나면 어린 손주 나무들이 할머니의 몸을 의지하여 터를 잡고 싹을 틔우기 시작한다. 튼튼하게 자리 잡은 뿌리 위에서 수많은 후손들을 길러내는 것이다. 세상의 대부분의 나무들이 그렇게 후손들을 어부바하는 것이다.

힘들 만도 한데 솜털이 보송보송한 손주를 등에 없으면 세상 모든 길이 환해진다. 세상을 주행하는 길이 힘들지도 않다. 할머니는 손주가 행여 다칠까 등에 품고, 손주는 할머니의 인생길에 내비게이션이 된다. 막혀도 즐거운 인생 주행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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