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못 먹는 여자가 작은 술병을 모은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 한번 휙 불어주는 시원한 바람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많을것이다.
취미를 통한 소소한 재미뿐만 아니라
내가 평상시 하고 있는 일과는 연관없는 다른 취미생활을 통해
내 세상이 아닌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한다는 기쁨을 얻는다.
나는 작은 미니어처 술병을 모은다.
술을 모은다는게 더 정확할 수도 있겠다.
실제로 나는 술은 잘 못마신다. 몸이 짤짤 떨리게 하는 그 맛이 별로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 말을 빌리자면 자꾸 실실 웃는단다.
잘못하면 큰 실수가 되는 이 버릇때문에 나는 술을 안마신다.
그리고 잠을 못잔다. 밤새도록 청소하고 옷장 정리를 하며 새벽을 맞이한적이 몇 번 있다.
하지만 아주 친한 사람들이라면 맥주 한 잔 정도는 마신다. 분위기상.
지금도 가끔은 어릴때 항아리에서 엄마 몰래 떠 먹던 동동주를 한번 먹어보고 싶기는 하다.
뚜껑을 들면 밥알 동동 뜨며 짜글짜글 소리나던 동동주가 가끔 생각난다.
아마 동동주 맛이 아니라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때문일것이다.
어쨋든 나는 술마시는 것을 즐기지는 않는다.
그런데 술병 모으는 것을 좋아한다.
정확하게는 술병 미니어처를 모으는데 간혹 미니어처가 아니라도 집에 선물로 들어오는 술을 차곡차곡 수납장에 모으고 있다. 집에는 술마시는 사람이 없어서 줄지는 않는다.
전주 여행을 가서는이강주 도자기 미니어처를 구해왔고 안동에 갔을때는 알콜 45% 안동소주를 데려왔다.
제주도 가족여행을 갔을때 나는 GS25만 보면 한라산 올레 미니어처를 사야한다고 차를 세워달라고 했고 신랑은 "그거 뭐하러 사냐"며 그냥 지나쳐서 내 혼자 제주도 여행을 해야겠다 마음먹은적도 있었다.
그때가 술병모으기 취미가 붙기 시작할때라 신랑도 내가 그냥 별스럽다고 생각한것 같다.
하지만 작고 특이한 술병이 하나씩 생겨나자 이제는 자신이 장식장으로 옮겨놓자고한다.
다음에 제주도를 가면 소주공장 견학 신청을 해보고싶다. 소주미니어처랑 상품들이 있다고 한다.
가끔 대구여행을 한다.
어느 날은 약속장소를 대구백화점 지하 영풍문고로 정했는데 그곳에 뻬에로쇼핑이 입점해 있었다.
돌아보던 중에 주류코너에 있는 미니어쳐를 발견하고 얼마나 반가웠던지 모른다.
제주소주 푸른밤 여섯개짜리를 포함해 몇 가지를 샀더니 미니어처라해도 꽤 무게가 나갔다.
가방에 있던 카메라를 꺼내고 술을 넣었다.
어깨는 무거웠지만 그 후 일정은 등 뒤에 있는 소주병들로 인해 즐겁기만 했다.
한번 더 가야지 했는데 코로나로 막혔다.
술병이 예뻐서 좋아하기도 한다.
늘씬한 문배술, 두둠한 유리병에 술 이름만 적힌 대장부, 붉은 술인 감홍로를 담고 있는 도자기,
양주병인줄 착각하게 하는 홍주.
이런 것들은 병만으로도 보기좋다.
살아오면서 몇가지 취미는 가지게 되는 것 같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혹은 두 잔 마시는 금액으로 즐기는 일탈같은 취미다.
아직도 나는 우체국에서 간혹 우표를 사온다.
지난 3월에는 한국의 항공기 우표를 구입했다.
한국의 만화 100주년 기념우표나 한글학회창립100돌기념우표처럼
의미있는 우표가 발행될때는 가끔 구입한다.
발행양이 많아 금전적 가치가 올라가는건 아니지만 기록이나 역사라는 가치를 내가 갖는 것이다.
외국여행에서 마그네틱을 사오는 것처럼 하나하나에 내 추억도 한줄 들어가 있다.
술병은 앞으로 얼마나 더 모으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직은 나에게 소소한 행복을 주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