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순욱이 불러낸 하덕규와 ‘시인과 촌장’
상경길.
버스 안.
1.
레전드 포크 듀오 ‘시인과 촌장’의 싱어송 라이터 하덕규는 58년 개띠다. 베이비 부머의 맏형 격이다. 근황이 궁금하여 서치 해보니 백석예술대학에서 후배들을 가르치다 지난 2023년 8월 정년 퇴직했단다. 벌써 나이가 그렇게 됐다. 개신교 크리스천인 그는 2000년 대 초 암투병 끝에 회복, 크게 각성한 바 있어 아예 목회자가 되었다는데(2010) 지금은 어느 한적한 교회에서 하늘의 이치를 전하고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미술학도(추계 예대 중퇴) 임에도 대중음악으로 깊은 족적을 남긴 것은 김민기와 유사하다. 앨범 커버를 자신의 그림으로 남길 수 있었던 사유다.
2.
어쿠스틱 기타의 지존이자 세션 기타 불후의 명인 함춘호는 2집(1986)부터 함께 했다. 61년 생이니 하덕규보다는 세 살 연하다. 작사. 작곡을 하덕규가 도맡아 했으나 일부는 함춘호가 편곡을 도왔다.
가요사에 길이 남을 ‘가시나무 새’는 3집(<숲>,1988)에 수록되었는데 공교롭게도 함춘호 없이 거의 혼자 솔로로 제작했다.(자료엔 기타 이병우, 프로듀싱 조동익이란 설명이 있다.) 존재의 의미와 회한, 절대자(당신)를 향한 고백 등 그리스도교적 성찰이 짙게 배어 있다. 조성모의 리메이크로 크게 역주행, 2집(<푸른 돛>)과 더불어 대한민국 100대 명반에 포함되어 있다.(개인적으로는 원곡과 함께 ‘나가수’에서 자우림의 김윤아가 부른 버전을 좋아한다. 자줏빛 선연한 통회가 김윤아의 대체불가 음색과 록 멜로디로 절절이 전해져서다.)
하덕규는 대부분의 곡을 본인이 직접 불러 소화했지만 몇몇 곡은 예외적으로 남에게 주기도 했다. 대표적인 노래가 ‘한계령’. 처음엔 본인이 부르다 곧 양희은에게 온전히 건네준다. 가사 일부(“바람으로 살다 갈 것을‘—>살다 가고파.)만 바꿔서.(하덕규, 양희은 중 누가 바꿨는지는 모르겠다. 맥락상 ‘가고파’가 더 낫다.) ‘가시나무 새’가 조성모가 원곡자인 듯한 것처럼 ‘한계령’도 마치 양희은의 노래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그녀가 이 곡을 애정을 한껏 담아 소화했을 것이기 때문이리라. 나의 최애곡 중 하나다.
남에게 준 또 다른 노래로 나미의 ‘나비’가 있다. 서치 하다 알게 된 곡으로 잘 알려지지는 않은 듯. 가수 나미와 하덕규가 잘 연결이 되지 않는데(멜로디는 더더욱) 가사를 보니 하덕규 냄새가 나긴 난다. ’ 가시나무 새‘와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유사한 느낌을 받는다.
비 오는 날 나비는 예쁜 꽃보다
날개 쉬어 갈 곳이 아쉽지요
바람 불면 나비는 예쁜 꽃보다
날개 다쳐 쉴 곳이 필요하대요
나미의 ‘나비’. 나미는 나미다.
아무렴, 그 서정이 어디 가기야 하겠는가.
3.
탄핵 정국에서 시인과 촌장의 ‘풍경’이 새삼 화제다. 대통령 탄핵 헌재 최종 변론기일 중에 국회 소추단 중 한 명인 장순욱 변호사의 멘트가 계기가 됐다. 자신이 좋아하는 가요의 가사대로 세상이 제자리를 찾아갔으면 한다는 소망을 피력한 것. ‘풍경’의 가사는 매우 짧고 간결하다. 하덕규의 여느 곡 같지 않게 서정이나 서사가 과감히 생략되어 있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
이게 전부다. 가사만큼이나 멜로디도 단순하다.
장순욱 변호사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지만 그 성정은 짐작할 수 있겠다. 65년 생이니 정서는 7080의 바로 그것일 게다.
4.
오전. 상경하기 직전.
도서관 다녀오는 길에 눈 쌓인 설악이 다시 보고 싶어졌다. 올겨울(이라 쓰고 지난겨울이라 읽는다고 했다.) 첫눈이 마지막 눈이 되었으니 기회가 될 때 한 번이라도 더 봐두어야 할 성싶었다. 엊그제 보아둔 그 산과 벌판의 ’ 풍경‘은 제자리에 있었다. 다행이다.
주말에 낙향하게 되면 마눌 손잡고 정말 한계령엘 다녀와야겠다. 하덕규와 함춘호와 양희은이 더 듣고 싶어졌다. 당근, 한계령은 제자리에 있을 것이다. 아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