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울밴드

8화 민서의 손

by 봄울

민서는 늘 장갑을 끼고 다녔다.

얇은 면장갑이었다.


여름에도, 음악실에서도.

처음엔 아무도 묻지 않았다.
이 학교에서는
묻지 않는 게 예의였으니까.


민서는 피아노 앞에 앉을 때만
장갑을 벗었다.

건반 위에 손을 올릴 때,
그 손은 늘 조심스러웠다.


마치
소리를 세게 누르면
무언가가 깨질 것처럼.


민서는 예전에 다니던 학교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다만 피아노 소리가 갑자기 어두워질 때가 있었다.

밝은 곡을 연습하다가도,
어느 순간 손이 멈췄다.

그리고 아주 작은 소리로
건반을 다시 눌렀다.

그날도 그랬다.


연습 도중, 민서의 손이 공중에서 멈췄다.

은찬의 드럼은 조용해졌고, 유셉의 기타도 숨을 골랐다.

하나는 민서를 바라보았다. 말없이.




민서의 머릿속에는 다른 교실이 떠올랐다.

피아노가 없는 교실.
책상이 빽빽하게 놓인 공간.

그곳에서
민서의 손은 늘 표적이었다.


“그 손 왜 그래?”
“징그러워.”
“만지지 마.”


누군가 웃을 때마다 민서는 손을 숨겼다.

주머니 속으로.
소매 안으로.
책상 아래로.


손을 숨기면
마음도 조금 숨을 수 있었다.

피아노 앞에서만 민서는 손을 꺼냈다.

아무도 손을 보지 않는 것 같았고,
아무도 손을 평가하지 않는 것 같았으니까.

민서는 그게 음악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괜찮아?”


유셉이 조용히 물었다.

민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손은 여전히 건반 위에 올리지 못했다.

그때 하나가 다가왔다.

하나는 민서의 손을 보지 않았다.

대신 민서의 얼굴을 봤다.

그리고 꼬옥 안아주었다.


피아노의자에 앉아있는 민서를

등 뒤에서 포옹하고 있는 하나는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무언가의 말을 건네고 있었다.


민서는 숨을 한 번 고르고
다시 장갑을 벗었다.

이번엔 조금 덜 숨기듯이.

건반 위에 손을 올리자 소리가 났다.


완벽하지 않은 소리.
조금 떨리는 소리.


그런데 아무도 웃지 않았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다.

소리만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연습이 끝난 뒤,
민서는 장갑을 다시 끼지 않았다.

손을 주머니에 넣지도 않았다.

그냥 그대로 두었다.




그날 밤, 민서는 집에서 혼자 피아노를 치다가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손이 문제가 아니라,
그 손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이 문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리고 여기서는 그 시선이 다르다는 생각.


다음 연습 날, 민서는 장갑을 가방에 넣어 두고
음악실에 들어왔다.

아직 완전히 벗을 용기는 없었지만, 숨기지도 않았다.

하나는 민서를 보고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민서는 그게 괜찮다는 신호라는 걸 알아보았다.


그날, 봄울밴드의 음악에는 아주 작은 변화가 생겼다.

소리가 조금 더 오래 머물렀고, 조금 덜 다쳤다.

민서의 손이 처음으로 자기 자리를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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