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울밴드

9화 이름을 부를 수 없는 아이

by 봄울

루이는 자기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아이가 아니었다.

이름을 부르면 고개를 들었고,
노래를 시키면 정확하게 음을 맞췄다.


하지만 노래가 끝난 뒤에는
항상 한 박자 늦게 숨을 쉬었다.

마치 자기 차례가 다시 올까 봐
미리 조심하는 것처럼.


루이의 엄마는 먼 나라에서 왔다.

바닷길을 건너야 했고, 말이 달랐고,
사람들이 엄마를 부를 때 이름보다 먼저 출신을 불렀다.


루이는 어릴 때 자기가 왜 다르게 보이는지 몰랐다.

다만 알았던 건, 학교에서 자기 이름보다

피부색이 먼저 불린다는 것.


“너 한국 사람 아니지?”
“엄마가 외국인이래.”


루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면 더 많은 질문이 올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말이 더 적어졌다.

소리가 커지는 날이 있었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날이 있었다.

루이는 방 안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소리를 내면 누군가가 더 화를 낼까 봐.

그래서 루이는 노래를 안으로만 불렀다.


봄울학교에 처음 왔을 때, 루이는 키가 또래보다 작았다.

몸도, 목소리도 자주 접혀 있었다.

하지만 음악실에 들어오면 조금 달라졌다.


“할렐루야—”


그 한 소절을 부를 때만큼은
루이의 목소리가 자기 몸보다 커졌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소리가 아니라,
자기 안에서 처음으로 허락된 소리였다.


어느 날 연습이 끝난 뒤, 루이는 혼자 창가에 서 있었다.

하나는 그 옆에 조용히 섰다.

말은 없었지만, 루이는 그 시선을 느꼈다.

피부도, 키도, 말도 묻지 않는 시선.

그냥 같은 소리를 들은 사람의 얼굴.

루이는 그날 처음으로 생각했다.

내가 작아진 게 아니라,
나를 작게 만드는 말들이 있었던 거구나.


그리고 여기서는
그 말들이 힘을 잃는다는 것도.

다음 연습 날, 루이는 노래를 부르며
고개를 조금 더 들었다.


소리는 여전히 맑았고, 여전히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숨기지는 않았다.

그날, 봄울밴드의 노래는 조금 더 멀리 나갔다.

크게 부르지 않았지만, 사라지지 않는 소리로.


누군가의 어릴 적 밤을 지나,
누군가의 오늘 아침까지
조용히 닿을 수 있는 소리로.




루이는 노래를 고를 때 늘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다.


“이건 어때?”
“이건 좀 유치하지 않아?”
“찬양은 아니잖아.”


말들이 오갈 때마다
루이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웃거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도 음악실 칠판에는
여러 곡의 제목이 적혀 있었다.


동요, 찬양, 자작곡,
그리고 맨 아래에 적힌 한 줄.


바나나 알러지 원숭이


은찬이 먼저 웃었다.


“이거 알아. 되게 웃긴 노래야.”


민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알아. 근데 이걸 우리가 해?”


유셉은 루이를 바라봤다.
루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칠판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루이?”


유셉이 불렀다.

그제야 루이가 말했다.


“이 노래… 나 어릴 때 진짜 많이 불렀어.”


목소리는 밝았지만 어딘가 조금 느렸다.


“엄마랑 같이.”


그 말 뒤에는 아무 설명도 붙지 않았다.

연습을 시작하자 분위기는 예상보다 훨씬 가벼워졌다.

은찬의 드럼은 통통 튀었고, 민서의 피아노는 장난처럼 리듬을 눌렀다.

유셉은 기타를 최대한 단순하게 쳤다.
노래가 앞으로 나가도록.

그리고 루이가 노래를 시작했다.


“나는 바나나 알러지 원숭이—”


처음엔 조금 어색했지만 후렴으로 갈수록
루이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그때 하나가 웃었다.

아주 크게, 참지 못한 얼굴로.

하나는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몸을 흔들었다.

어깨가 먼저 움직였고, 발끝이 바닥을 툭툭 찍었다.


원숭이 흉내를 내듯 손을 들었다가, 빙글 돌았다.

웃음이 음악실 안을 채웠다.

루이는 노래를 부르다가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 다시 노래했다.

이번에는 누군가를 설득하려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잘해야 한다는 마음도 아니었다.

그냥 즐기고 있는 아이의 목소리였다.

노래가 끝났을 때
가장 먼저 박수를 친 건 선생님이었다.


“이거야.”


선생님이 말했다.


“너희 나이엔, 이런 노래도 예배가 될 수 있어.”


연습이 끝난 뒤 루이는 음악실 한쪽에 앉아 있었다.

유셉이 옆에 와 앉았다.


“왜 이 노래 좋아해?”


루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이 노래는… 웃기잖아.”

“근데,웃긴데도
혼자만 이상한 건 아니잖아.”


유셉은 고개를 끄덕였다.

루이는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조금 더 말했다.


“나도 가끔 이상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었거든.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근데 이 노래는 이상한 게 그냥 설정이야.”


그날 집에 돌아간 루이는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기억나? 바나나 알러지 원숭이 노래. 오늘 그걸 불렀어.”


엄마는 잠시 루이를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웃어 주었다.

그 웃음은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웃음이었다.

다음 연습 날, 루이는 먼저 음악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말했다.


“오늘도 원숭이 할까?”


하나는 이미 웃고 있었다.

그날, 봄울밴드는 알게 되었다.

모든 상처가 울음으로만 치유되는 건 아니라는 걸.

어떤 아이에게는 웃음이 먼저 숨을 돌려준다는 걸.

그리고 그 웃음은,
노래가 될 수 있다는 걸.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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