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끝까지 들은 사람
회의 자료는 늘 많았고,
보고서는 짧을수록 좋았고,
영상은 30초 이상이면 지루했다.
그날도 그랬다. 청년 문화 프로젝트 검토 회의.
보좌관이 말했다.
“이 영상이 지금 아랍권에서 빠르게 공유되고 있습니다.”
그는 고개만 끄덕였다.
“재생하세요.”
화면에는
조명이 어둡고
자막도 없는
한국의 아이들이 있었다.
기타 한 대.
낯선 언어.
“메카야, 메카야…”
누군가가 중간에 속삭였다.
“무슬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영상은 계속 흘렀다.
그는 몇 달 전,
병실 천장을 오래 바라본 적이 있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무너졌던 시간.
언론은 그를
'젊은 개혁가'라고 불렀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사람을 살리는 건 정책이 아니라는 걸.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 밤들이
그에게도 몇 번 있었다.
그때 어떤 음악이
병실에 흘러나왔다.
언어는 기억나지 않는다.
가사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음 하나가
그를 붙잡아두었다.
그는 그 이후로
음악을 가볍게 듣지 않았다.
영상 속 아이들이
마지막 소절을 불렀다.
“들어가지 않아도
마음은 닿아…”
그는 재생 버튼을 멈추지 않았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누군가 물었다.
“이것은 종교 문제입니까?”
그는 잠시 생각했다.
“아닙니다.”
“하지만 메카라는 이름은—”
그가 말을 이었다.
“그들은 들어오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잠깐의 정적.
그는 화면을 다시 한 번 바라봤다.
아이들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차지하지도,
설득하지도,
비판하지도 않았다.
그냥
잘 되기를 바랐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이 아이들… 누굽니까?”
보좌관이 태블릿을 넘겼다.
“한국의 청소년 밴드입니다.
기타를 치는 아이는 시리아 출신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전쟁을 겪은 아이군요.”
그리고 아주 낮게 덧붙였다.
“그래서 축복을 아는 걸지도 모릅니다.”
회의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 노래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그건
정치의 문제도,
종교의 문제도 아니었다.
태도의 문제였다.
그는 천천히 말했다.
“성지는 지켜야 합니다.”
회의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가 말을 멈췄다.
“아이들의 마음은
막을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그날 밤,
그는 집으로 돌아가
혼자 다시 영상을 재생했다.
기타 한 대.
작은 목소리.
“사랑은 도착한다.”
그는 처음으로
그 문장을 소리 내어 읽었다.
"사랑이 도착한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보좌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