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지만, 중요한 것들

느리게 자라는 사람의 힘

by 봄울

나는 1년이 넘도록 아이를 만나지 못했다.

아이 둘 모두 발달장애가 있었고,
둘째는 태어나던 날부터
“걸을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받아들였다.
그건 슬픔도, 서러움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이었다.


아이의 속도가 느리면
내가 더 느리게 걸으면 되는 것이었고,
아이의 높이가 낮다면
내가 더 많이 낮아지면 되는 일이었으며,
아이의 세상이 좁다면
내가 그 안으로 들어가
천천히 불을 켜주면 되는 일이었다.


아이에게 장애가 있든 없든
그건 내 사랑의 크기를 바꾸지 않았다.
나는 그냥,
아이의 엄마였다.


그러나
그 진심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남편은 무너졌다.
그도 내 안처럼 상처받은 사람이었다.


어느 날 밤,
그는 술에 취한 목소리로
첫째 아이가 발달장애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했다.

나는 잠결에 말했다.


“예상하고 있었어.”


나는
준비하고 있었다는 의미로 말했지만,
나는 아이를 지키겠다는 뜻으로 말했지만,

그 말은
그 사람의 마음을 산산조각 냈다.


“네가 다 알고 애들을 버렸구나.”


그는 그렇게 믿었다.
그리고 그렇게 상처받았다.


깨진 유리는
먼저 자신을 베고,
그다음 가까이 있는 사람을 베게 된다.


그 이후로
나는 아이들을 볼 수도,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었다.

친권과 양육권은
모두 남편에게 넘어갔다.


아이들 곁에 있고 싶어서
나는 주거지를 청주로 옮겼다.
돈이 많지 않았기에

고시원에서 살았다.


작은 원룸에 있던 짐을 줄여가며
눈물로 상자를 정리하는 날들이었다.

아이 생일에 맞춰
생일 케이크를 보내고

하루를 기다리듯이
전화 한 통을 기다렸다.

그리고 영상 통화가 열렸을 때
첫째 아이를 보며 말했다.


“엄마가 꼭 데리러 갈게.”


나는 말했다.
그리고 아이는
“네”라고 했지만

아이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아이도 알고 있었다.
말을 잘못하면
아빠의 마음이 닫힐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울음을 가슴으로 삼키고 있었다.


내 아이는
그 어린 나이에
사랑과 두려움 사이에서
스스로 균형을 잡고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가혹한 일인지
아이의 눈이 알고 있었다.


어느 날,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를 고시원에 데려다주었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들어갈 수 없었기에
혼자 내렸다.

그때
뒷좌석에서
첫째 아이가 울부짖듯 말했다.


“아빠, 엄마를 버리지 마세요.”


그 말은
한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 큰 슬픔이었다.

나는 차문이 닫히는 순간
그 아이의 울음소리를 상상했다.


아빠는
그 울음을 듣기 싫어했을까.
아니면 더 이상 하지 말라고
아이를 다그쳤을까.


그날 밤
나는 아이가 삼킨 눈물의 무게를
오래도록 가슴으로 안았다.


아이는 상처를 모른 채 자라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는 사랑을 모른 채 자라지도 않는다.

나는 내 아이가
언젠가 이 시간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랐다.


엄마가 멀어진 것이 아니라
엄마가 가까워지기 위해 버틴 시간이었다는 것을.

엄마가 떠난 것이 아니라
엄마가 다시 돌아오기 위해 견딘 시간이었다는 것을.

엄마가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엄마가 사랑으로 무너졌던 시간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배웠다.


사랑은 빨리 자라지 않는다.
사랑은 느리게, 아주 느리게 자란다.


사람도 그렇게 자란다.


천천히.
흔들리며.
결국 다시 꽃을 피우며.


아이도, 나도,

사랑을 기다리고 있었다.



화, 목,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