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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여름 2시간전

At my worst

결국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


그리고 치료를 시작했다. 당연히 복직할 수 없었고 휴직 기간을 늘렸다. 학교 역시 휴학했다.


집 공사 공정도 멈췄다. 공사비를 더는 감당할 수 없었고 살고 있는 집은 보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집이 팔려야 남은 공사비를 충당하고 마무리할 수 있었으나 그 일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내 손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음을 깨달았을 때, 오히려 마음이 가라앉았다. 공황과 불안 증세가 어느 정도 사라지자 나는 나에게 생긴 마음의 병을 치료하려 적극적으로 노력했다. 진료 주기로 기록한 내 증상을 주치의에게 알리고 상의했다. 수시로 도서관을 찾아 마음 질환 관련 서적과 논문들을 찾아보며 나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조사했다.


운이 좋았던 건 나의 진료를 맡은 전문의가 약물 치료에 집중하기보다 나의 노력들에 적절한 대응으로 심리 치료에 임해주었던 것이다. 그는 마음 챙김, 삶의 균형을 찾을 수 있는 질문들로 치료 과정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었다.


어머니는 수시로 나와 시간을 함께 하셨다. 오전에는 함께 운동을 했고 저녁에는 아이, 나, 친정 엄마 이렇게 세 식구가 식사를 함께 했다. 매일 밤 이어졌던 우리의 이야기는 함께한 추억과 무용담을 너머 상처를 어루만지기도 했다.


일상이 야근인 남편과는 주말마다 함께 시간을 보냈다. 남편과는 매주 근거리에 있는 온천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다녔다. 온탕의 온도가 매우 높았던 허름한 시골 온천에서 몸을 데우고 점심을 먹는 일을 몇 주간 지속했다. 처음에는 이방인처럼 느껴지던 내가 점차 그곳 문화에 적응하고 있었다. 허름하고 지저분하게 보였던 시설물은 사실 정갈했고 편안했다.


몇 주간 반복해서 찾아가니 카운터 사장님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처음에는 자리가 나면 자리를 맡아 씻기도 했지만 얼마 후 샤워기 하나면 충분함을 알게 됐다. 온천에 들고 다닌 건 칫솔 하나, 여행마다 모아둔 10 미리 용기에 든 샴푸와 트린트먼트, 바디샤워뿐이었다. 가벼운 차림과 간단한 소지품으로 남편과 다녀오는 8000원짜리 하루 온천 여행은 나에게 치유가 되었다.


가족들의 사랑과 배려, 나의 의지와 노력, 전문적이지만 따뜻한 관점의 진료 덕분에, 나는 점차 불안과 공황장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회복과 함께, 나는 집 정리와 식사 준비, 아이와의 시간에 가장 비중을 뒀다. 다시 요가를 시작했고 규칙적인 하루를 보내는 데 집중했다. 얼마 후 우리는 살고 있던 집을 최저가로 내놓았다. 그러자 집을 보러 오는 이들이 생겼고 머지않아 집이 거래되었다. 계약금이 들어오고 공사를 재개했다. 우리는 계약자가 원하는 이사 일정에 우리 일정을 맞추기로 했다. 공사가 채 마무리되기 전이었다.


바닥 보양지도 뜯지 않은, 공사 먼지가 가득한 집에 덜 끝난 상태로 이삿짐을 옮겼다. 대안으로 보관 이사도 있고 공사 중에 임시숙소에 거처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자금을 최대한 아껴야 하는 상황이었고 공사를 하루라도 빨리 마치겠다는 남편의 의지도 있었다. 풀지 못한 이삿짐은 먼지 가득한 공사장 곳곳에 배치되었다. 남편과 나는 다락방을 간단히 정리하고 생활을 시작했다. 수전도 달리지 않은 보일러,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공사장에서 숙식을 하며 공사를 마무리했다. 전기 공사, 가구 공사, 보일러, 수전 설치가 이어졌다. 낮에는 공사장이었고 밤에는 우리의 보금자리였다.


커튼이 없는 집에서는 해가 뜨는 시간이 곧 기상 시간이었다. 새벽 4시, 5시고 해가 뜨면 집 근처 사우나로 갔다. 그간 여행에서 모아둔 편의용품을 이 두 달 동안 모두 사용했다. 사우나 후 6시면 여는 김밥 천국에서 기본 김밥 두 줄을 포장해 와 나누어 먹었다. 새벽부터 찾아온 공사 작업자들과 남편이 오전 작업을 함께 하고 회사에 가면 나는 남은 하루를 그들과 보냈다.


하지만 지치지 않았다. 하루하루 나아지는 나와 남편, 그리고 우리 집이 있었다. 저녁이면 친정엄마가 아이와 함께 공사장에 들렀다. 우리는 저녁을 함께 먹고 아이는 친정엄마를 따라 외가로 갔다. 남편은 나도 친정에서 지내기를 바랐지만 나는 친정보다 공사장 다락방이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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