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
낮에는 공사를 하고, 밤에는 먼지 속에서 잠드는 생활을 석 달쯤 이어갔다. 그렇게 우리는 끝내 모든 공사를 스스로 마무리했고, 드디어 진짜 입주 준비에 들어갔다. 이삿짐 그대로 밖에 쌓아두었던 먼지 가득한 살림들을 하나하나 씻고 닦았다. 보양지를 벗기고 입주 청소를 마친 뒤, 마침내 준공이 떨어졌다.
그토록 기다려온 시간이 찾아왔다. 친정에서 아이를 데려왔고, 세 가족이 다시 하나가 되었다. 주변을 정리하고, 매일 청소하고, 아침밥을 차리는 평범한 일상이 그저 고마웠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챙기며, 나는 조금씩 나의 자리를 찾아갔다.
손이 닿는 위치가 나의 위치,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기. 요가 수련 중 들은 이 말의 의미가 가슴 깊이 와닿기 시작했다.
그 무렵, 나는 일상을 회복해가며 동시에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 꼭 마주해야 할 본질적인 질문들에 다시 다가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질문을 좀 더 진지하게 탐색하고자 휴학 중이던 대학원에 복학했다.
대학원 진학이라는 선택은 누군가에게는 도피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소진되어 가던 나 자신을 붙잡기 위한 절실한 시도였다. 주어지는 다양한 과제를 통해 내 가능성을 시험해보기도 했고, 진심을 다해 학업에 참여했다. 그 시간은 결국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를 나 스스로에게 묻는 과정이었다.
그 안에서 내가 진짜 알아내고 싶었던 것은, 결국 ‘나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일’이었다. 가장 숨 가빴던 인생의 순간, 내가 대학원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그곳에서 내가 진짜로 찾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 답을 통해, 나는 나 자신은 물론 가족의 삶에도 조금 더 나은 행복을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세 번째 학기를 마친 뒤, 내게는 큰 변화가 찾아왔다. 그리고 그 변화를 자각하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책쓰기 수업이었다. 교양필수 과목이라 마지못해 수강한 수업이었고, 처음엔 여느 과목처럼 성실히만 임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시간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될 줄은 몰랐다. 한 학기 동안 책을 쓰는 과정을 통해, 나는 39년의 삶 동안 찾아 헤매던 ‘나’라는 존재를 처음으로 또렷하게 마주할 수 있었다.
삶의 여러 시기마다 겪었던 실패와 방황, 서로 다른 길 위에서 시도해왔던 수많은 도전들이 하나의 서사로 엮이며 내 앞에 펼쳐졌다. 그 조각들이 하나로 이어질 때, 마치 오랜 시간 맞춰오던 퍼즐의 전모가 드러나는 듯했다. 그 순간, 나는 ‘나에게로의 여행’이 어느 하나의 지점에 다다랐음을 느꼈다.
나에 대한 이해와 글쓰기에 대한 화해, 그 여정에서 얻은 첫 번째 수확은 나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였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무엇이 나를 움직이고, 어떤 일에 분노하며, 어떤 선택을 반복해온 사람인가? 방황하던 길 위에서 나를 이끈 것은 무엇이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처음으로, 그런 질문들을 끝까지 따라가볼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글쓰기에 대한 거리감을 극복한 것이었다. 진심을 다해 일했지만 언제나 의도와 결과 사이에서 어긋날 수밖에 없었던 직장 생활, 도파민을 좇아 흩어지듯 써왔던 온라인의 사색들, 완전한 자유로 보였지만 결국은 마음의 골을 더 깊게 만들었던 말들의 방황… 그런 시간들 속에서 나는 글쓰기를 통해 진심을 나누는 방식에 늘 실패했다고 느꼈다. 그래서 책쓰기 수업 초반에도 쉽게 마음을 열 수 없었다.
하지만 학기가 끝나갈 무렵, 나는 결심했다.
이 책은 반드시 마무리하겠다고. 출간 여부나 독자수, 평가와 상관없이, 외부의 기준과 무관하게, 첫 번째 책쓰기는 내 손으로 끝을 맺겠다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마침내 ‘my own irreplaceability’ 대체 불가능한 나만의 것의 윤곽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살아온 경험과 생각, 마음, 행동들이 쌓여 만들어진, 오직 나만이 전할 수 있는 이야기. 그 이야기는 책쓰기라는 과정을 통해 내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마침내 이야기를 담을 밑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가 꼭 남들과 달라야 할 필요는 없다. 남들과 비슷해 보여도, 그 안에 진짜 내가 담겨 있다면, 그것은 나만의 이야기다.
이제 나는 이유를 찾기보다, 살아내기로 했다. 더는 완벽한 설명이나 의미를 붙들지 않아도, 삶은 매일 나를 통과해 흘러간다. 때로는 흔들리고 가라앉기도 하지만, 손이 닿는 자리에서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가고 있다.
완전히 회복된 것도, 완전히 자유로운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안도한다. 결국, 나는 내 삶 안에서 나만의 세계를 만들고 있다.
손이 닿는 위치에서, 한 걸음씩 나아가며.
그리고 언젠가는 사라질지도 모를 지금을, 이 리듬을, 충분히 사랑하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