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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

by 서여름

가장 치열하고 고단했던 시기였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과 마주한 채, 나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남편은 “지금 이 시기에 웬 대학원이냐”고 말했다.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은, 어쩌면 당연했다. 평일에는 직장과 공사 현장을 오가느라 아이를 돌볼 시간조차 없었고, 그 와중에 밀려 있는 과제를 처리해야 했다. 매주 토요일마다 이어지는 9시간 수업으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은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그 모든 시간은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한 선택이었지만, 나는 그것을 이기적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감당해야 할 삶의 역할을 진심으로 살아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나답게 사는 법’을 먼저 이해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토록 멀리 밀어내고 싶었던 감정들이 사실은 나를 붙들고 있던 본질이었다는 걸, 나는 마침내 받아들일 수 있었다. 무너지고 흔들렸던 시간들은, 이제 돌아보면 내가 나에게 더 가까워지는 여정이었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는 오래된 믿음 대신, 그저 지금의 나로도 충분히 괜찮다는 사실을, 나는 삶을 통해 배워가고 있다.


삶은 여전히 완성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수많은 질문과 선택들이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 모든 질문들 앞에서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내가 만든 작은 세계, 손이 닿는 위치에서 시작한 이 세계 안에서, 나는 매일 나를 돌보고, 쓰고, 살아낸다. 그리고 그 하루하루가 쌓여, 결국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가 된다.


그 무렵, 책쓰기 수업을 들으며 나는 페이스북에 이렇게 적었다. “자아실현이란, 특별히 대단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내 안에 진짜 나를 발견하고, 그를 데려오는 것.” 그 문장은 여전히, 내 삶에서 가장 진실한 말로 남아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길 위에 서 있다는 걸 믿는다.


나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는 아이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졌고, 아이를 향한 사랑은 더 넓은 공감과 세상에 대한 이해로 확장되었다. 과거에 내가 존중받지 못했던 기억들이 아이에게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이 나를 더 깊이 귀 기울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자연스럽게, 타인을 향한 이해로 퍼져갔다.


물론 나는 여전히 감정에 흔들린다. 타인의 이기심에 분노하고, 스스로의 미성숙함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하지만 그런 감정들 또한 한 인간의 일부임을 인정하며 살아간다.


내가 존경하는 한 사람이 말했다. “인격적으로 멋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알고서도 조용히 넘어갈 수 있는 경지에 이른 사람이다.” 나는 아직 그곳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그 말을 이해하기 위해 오늘도 나를 돌보고, 들여다보고, 살아간다.


이 글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39세까지, 나의 사회적 경험과 삶의 궤적을 담고 있다. 행복과 기쁨보다는 도전과 성장, 고뇌와 수많은 질문들로 채워진 이야기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마주했고, ‘나다움’이라는 이름의 문장을 다시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며칠 전 새벽, 명상과도 비슷한 깨어있는 상태에서 나는 긴 여정을 돌아보았다.


그동안의 삶을 이해하게 되었고, 내면 깊이 묻어두었던 감정들과 다시 마주했다. 처음으로, 나 자신이 가엾게 느껴졌다. 동시에 그 복잡한 미로를 지나 이 자리까지 온 나의 모습이 대견했다. 삶을 오래 억눌러온 근원적인 답답함은 어느 정도 걷혔고, 이제는 안에 머물러 있던 오래된 슬픔을 조용히 다독이려 한다.


성찰은 여전히 가장 강력한 회복의 도구다. 명상, 걷기, 글쓰기, 필사, 물건을 버리는 일상적인 정리… 그 모든 것들이 쌓여 나의 루틴이 되었고, 그 루틴은 점점 ‘삶 그 자체’가 되어가고 있다.



잘 몰라도 괜찮았던 경험이라면,

다시 해본다.


그런 작은 선택들이 이어져,

나는 나를 다시 발견해간다.


그렇게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삶의 리듬이 된다.


이제는 모든 것을 완벽히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다.

다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내는 것.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며,

언젠가는 또다시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리라는

그 믿음 하나면 충분하다.


그것이 내가 찾은,

참된 자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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