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소고 I
출판사 편집 담당자가 원고에 내용 추가를 요청했다. 추석연휴 전에 이메일을 받아서 연휴기간 내내 일했다. 요청한 내용은 제목에 맞게 포맷을 잡기 위해서 부록처럼 각 장 마다 짧은 글을 몇 줄씩 넣어달라는 것이었다. 내용을 빼달라고 하는 요청도 싫지만 추가해 달라는 요청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편집자가 보기에는 부족해 보이는 부분이 있더라도, 나는 나름대로 틀을 잡아서 썼으니까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당황하는 것이다. 어떤 글을 보완해 달라는 건지 이해했고 제목대로 책이 나오려면 필요한 부분이라고 판단돼서 바로 작업을 시작했고 마감기한인 10월 10일 전에 끝냈다. 10일에 다시 이메일을 받았다. 연휴로 인해 스케줄이 조정되었으니 13일까지 마감해서 보내주면 된단다. 일하느라 엄마 혼자 연휴를 보내게 한 일도 속상하고 서둘러 마쳤는데, 시간 여유가 더 생긴 것도 못마땅했다. 그래도 늦는 것보다 나으니 다행이라고 여겼다.
14일 오후에는 목업작업 시기와 출판예정일이 나올 것 같다. 나는 사실 원고를 수정해서 보낸 이후로 다른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다음 책을 준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쓰다 보니, 또 얼마의 글이 모아져서 이어 나가는 거지만 출간이 마무리되기 전에 또 출간을 준비하는 느낌이기도 하다. 좋은 건, 사실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나면 그때부터 시작되는 걱정이 있는데 다음 글을 시작하면 그 걱정이 싹 사라진다는 것이다. 다시 몰두하는 글에 그 걱정이 덮인다. 뭘 쓸지 몰라서 고민하는 시간보다 뭐든 쓰고 있는 시간이 내겐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내 계획대로 죽는 날까지 백 권의 책을 쓰려면 사실 충분한 시간일까 싶기 때문이다. 작가의 삶을 늦게 시작했으니 남들보다 더 부지런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그 바쁨이 좋고 글을 쓰는 내 직업에 대단히 흥미를 느끼고 있다. 나로서는 주변에 보이는 모든 것, 머릿속을 휘젓고 나가는 모든 생각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게 어떤 때는 좀 피로하긴 하지만 거기에서 내 행복이 시작된다는 걸 안다. 그 모든 것이 글이 된다면 좋겠지만 다 글로 나올 수 없다는 게 오히려 슬플 뿐이다.
나는 요즘 다시 오전에 글을 쓰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한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새벽이나 이른 오전 시간을 글을 쓰는 일에 할애하지 못했는데 다시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다. 나는 오전 대여섯 시 즈음에 들려오는 계절의 소리, 도로의 소음, 낯선 냄새 등을 좋아한다. 오롯이 그 시간대에서만 느껴지는 감각들이다. 그것들이 내 생을 생생하게 만든다. 하루의 싱싱함이 그것들로부터 시작된다. 이렇게 감사할 수 있을까? 어떤 직업의 사람에게 이런 세심하고 감격스러운 시작이 있을까? 내가 옮기고 싶은 것들을 글로 옮겨 담는 것이 일이라니 정말 아름답다.
출간을 앞두고 대부분 출판사의 일만 남아 있는 상황에서 나는 모든 것이 즐겁다. 다른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좋다. 다시 책을 읽는 시간에 몰두할 수 있을 것 같아 좋다. 카페에 책과 노트북을 들고 가서 보낼 수 있는 순간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아 좋다. 계절은 초가을이고, 가을냄새를 밀면서 자주 부슬비가 내리고 있다. 계절이 자꾸만 나를 밖으로 밀어내고 나는 전시장으로 카페로 또는, 차를 끌고 도로로 나간다. 지금보다 더 나은 시간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