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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만남, 따스한 여운

일상의 소고 I

by 보나쓰

지금은 복개공사를 해서 보이지 않게 된 개천길. 그 길에서 우연히 오래된 친구를 만난 적이 있다. 중2 때쯤 같은 반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사실, 나는 그녀가 나의 이름을 불러 세워서 대화를 시작하고도 그녀가 누군지 정확히 기억해내지 못했다. 누구지? 아는 얼굴인데? 몇 살 때지? 머릿속에 맴돌았다. 반면, 그녀는 나를 정말 반가워하면서 어떻게 지냈냐, 보고 싶었다, 어디 살고 있냐 등의 질문들을 정말 친한 10년 지기 친구처럼 물었다. 나는 대략 그녀가 나의 당황스러운 마음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보편적인 질문들을 했다. 그녀는 결혼을 했고 딸이 둘이란다. 아직 고향에 살고 있다고 했다. 부모님은 안녕하시지?라는 질문을 하다가 번개를 맞은 듯이 깨달았다. 기억이 났다. 바람에 실려오듯이 그녀의 이야기가 내 가슴속에 떠올랐다.


그녀의 아버지는 청각장애인이고 어머니는 시각장애인이셨다. 그녀는 소녀가장이었다. 한 번은 그녀가 사라졌었다. 대략 한 달이나 두 달쯤 되었을까. 그녀가 학교로 돌아왔다. 돈 벌러 양말공장에 갔었단다. 그녀는 귀까지 보이는 짧은 머리에 칠흑 같은 까만색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에 언제나 밝은 작은 얼굴로 수다를 떨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와 내가 대화를 했던가? 그녀와 사적인 대화를 나누고 같이 점심을 먹는다던가 하는 일은 기억에 없지만 내게 친절했던 그녀를 떠올렸다.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떠오르자 나도 마치 잃었던 친구를 만난 듯이 보다 사적인 질문을 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우리는 따로 카페를 들어가지는 않았다. 길 한복판에 서서 시간을 잊은 듯 삼십 분쯤 떠들고 서있었다. 그녀와 헤어질 때까지도 나는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마치 학창 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짧은 시간이 내 마음을 따스하게 감쌌다. " 난 항상 키가 크고 멋진 네가 부러웠어." 그녀가 한 말이 그때의 내 모습을 멋지게 만들어 줬다. 어쩌면 나는 전과는 달리 안정된 그녀의 모습 때문에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와 내가 기억하는 한 가지 같은 기억은 키 때문에 그녀와 내 자리는 거리가 있었다는 거였다. 그리고 우리의 담임 수학선생님은 얼굴에 화상이 있었지만 잘생긴 외모였다는 것도 떠올랐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변했지만, 그 변화 속에서 여전히 같은 기억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그날 이후로 그 친구가 가끔 생각났다. 추운 겨울 난로 주변에 몰려들었던 우리들을 기억하게 되었다. 내 마음이 좀 더 따스해짐을 느꼈다. 그녀가 깨워준 묵은 감정은 또 다른 친구들을 기억하게 했다. 우리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서 삶의 중요한 조각들을 발견하곤 한다. 그 조각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고. 연락처도 주고받지 않고 헤어졌지만 우리에게 다시 또 우연한 만남이 있지 않을까. 그때는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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