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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쓰 May 20. 2024

누군가의 슬픔을 안다는 것은

오늘도 내가 아는 어떤 이는 움직이는 시곗바늘 위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하루를 산다. 우울증이 빼앗아 버린 그 자신의 몸이 어떻게 늙어가는지 마음이 어떻게 식어가는지 알지 못한다. 그에게 봄은 겨울일 수도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그는 삶을 유지하기 위해 약을 먹고 있다. 자신의 몸이 아픈데도 자신 외의 모든 사람에게 죄인이 된 것 같은 미안함에 저항해야 한다.


그는 가끔은 이기적으로 살겠다고 다짐을 하고 가끔은 사랑하는 법을 금방 익힌 사람처럼 다정한 말을 하기도 하지만 오래 머무르는 감정은 아니다. 그의 단어는 나약하지만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감정의 회오리를 느낀다. 동시에 그 반대의 경우도 느낀다. 그는 애써 오늘도 살아내고 있다.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안부를 건넨다. 그의 울타리를 허물 수는 없지만 나라는 세상이 있다는 것도 알려주는 마음에서이다.


진심으로 누군가에게 위안과 응원을 보내고 싶을 때 그 슬픔에 함께 빠지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다. 섣부른 위로의 말은 하지 않는다. 내가 누군가의 슬픔을 위로한다고 해서 감정의 우위에 있는 것은 아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거든 곁에만 있어 주어도 도움이 되기도 한다. 내게 슬픔을 함께 한다는 것은 마음을 들어주고 그 마음이 되어보는 것이다.


말기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이정연작가에게 위로의 글을 건네는 대신 그녀의 책 '서른 살이 되지 못할 줄 알았습니다'를 읽었다. 급속하게 진행된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몇 해를 괴로움에 몸부림쳤던 나는 그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부분이 조금은 있었지만 온전히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아는 척 위로의 말을 남길 수는 없었다.


책을 쓰기까지, 투석을 받는 지금의 인생에 적응하기까지 그녀가 겪었을 외로움과 슬픔, 무서움이 뒤섞여 싸우고 견디는 것밖에 할 수 없었을 생활을 적잖이 짐작할 수는 있었다. 물론, 이조차 나의 섣부른 짐작일 수 있지만 나는 그녀의 책을 통해 진정으로 그 생활과 마음을 이해하고 싶었다. 어쩌면 사람은 자신의 아픔을 통해서만 타인을 위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특정한 사람에게만 공포와 불안감을 느끼는 공황장애가 있었다. 지금은 숨을 쉴 수 없다거나 괴로움에 약을 먹어야 하는 일은 없지만 한동안은 그런 감정적인 장애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서럽고 힘겨웠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나에게만 일어나지 않는 아픔은 없다. 그러니 타인의 슬픔에 몰인정하지 말자.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위안이 절실할 때가 올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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