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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쓰 Jun 19. 2024

여름 되기

나는 계절의 노래를 좋아한다. 지구별에서 한순간도 쉬지 않고 유동적이며 우아하게 자신을 변화시키는 건 자연뿐이다. 자연은 나에게 끊임없이 쉼을 주지만 스스로는 쉬지 않고 흐른다. 변화하지만 솔직하고 변함없이 세월을 적시는 위대한 존재. 그 경이로움에 자진해서 무릎을 꿇는다.


7~8월에 개화하는 안개나무 영레이디가 5월 말부터 활짝 피어 뽀얀 아기피부 같은 핑크빛 꽃을 자랑한다. 초록이 무성해지는 여름에는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꽃이 많지 않아서 이르게 찾아온 안개나무가 새삼 반갑다. 자연이 뱉어내는 계절의 향은 너무나 선겁다.


태양이 열기를 뿜어내기 시작하면서 하루도 집에 머물지 않았다. 두 개의 아이패드와 노트북, 책 한 권을 쇼퍼백에 넣고 행선지를 정하지 않고 무작정 나갔다. 도중에 내키는 카페로 달려가 아이스커피 한 잔을 시켜두고 짐을 풀면 본격적인 하루가 시작되었다. 자주 머무는 카페의 주변에는 무성한 나무와 누워서 쉴 수 있는 썬베드가 있다. 한 잔의 커피로 얻을 수 있는 그곳의 봄인 듯 여름인듯한 자연의 향기를 사랑한다. 


책을 읽다가 지루해지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책을 덮고 글쓰기를 멈출 때는 종종 눈을 감고 썬베드에 눕는다. 마주 보는 산에는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에도 푸릇하고 신선하고 뜨거운 여름이 물들어 있다. 가만히 있어도 벌써 송골송골 땀이 올라올 때도 있는데 그 기분도 나쁘지 않다. 여름이 오고자 하면 내게도 여름이 옮는 게 당연하다.


나를 실어 나르는 여름은 태양이 아닌 바람과 함께 익어갈 것이다. 바람이 뜨거워질 때쯤 나는 태양아래 붉은 피부를 기대하며 살을 드러내고 도로 위를 달려 바다로 갈 테다. 계절의 향기를 만끽하며 여름이 되어 열정이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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