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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쓰 Jun 21. 2024

부상

"악!" 

외마디의 비명과 함께 나는 콘크리트 바닥에 양손을 짚고 이마를 부딪히며 뻗어 있었다. 오른쪽 무릎에서 화끈거림이 느껴진다. 바이크는 내 왼쪽으로 넘어져 있고 헬멧으로 부딪힌 이마는 잠시 멍했다. 내가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달려온 사람들이 괜찮냐고 나의 몸 상태를 살폈다. 속도를 컨트롤하지 못해 바닥에 우습게 뻗어버린 나는 민망함이 앞서 괜찮다며 툴툴 털고 일어나 누군가가 세워 놓은 바이크에 다시 올라탔다. 괜찮다는 걸 보여주려는 듯이 나는 쉬지 않고 바로 바이크를 움직였다.


이틀째부터 바닥을 짚었던 손에서 열이 나고 욱신 거리고 손가락에 힘을 주기가 힘들었다. 그 상태로 다음 날에 다시 바이크를 탔다. 서킷을 도는 날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약을 먹고 아픈 손을 참아가며 네 시간 정도 트랙을 돌았다. 다음 날에 손가락을 전혀 굽힐 수가 없어서 그제야 정형외과를 갔는데 손바닥의 중요한 인대가 심하게 터졌다고 한다. 바닥에 부딪여서 놀랐던 이마나 무릎은 괜찮은데 정작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손바닥은 깁스를 할 정도로 다쳐 있었다.


열 번 정도 주사를 맞아야 인대가 잘 붙을 거라고 하는 말을 듣고 깁스를 왼손에 감고 집으로 돌아왔다. 깁스를 하니 생각보다 많은 부분에서 생활이 불편해졌다. 그 불편함으로 나는 그제야 아픈 사람이 되었다. 충격을 받은 곳과 아픈 곳이 다른 것에 대하여 어이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깁스를 요리조리 살펴보며 혀를 끌끌 찼다.


손쉽게 하던 모든 일들에 할 수 있느냐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삶은 정말 음험하다. 모든 과정이 정답인양 잘 흘러가다가도 갑자기 다리를 걸어 넘어 뜨린다. 절뚝거리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희열을 느끼는 것일까. 내 영혼이 좀 더 강해지길 바라는 걸까. 무엇이든 삶이란 내게 꼭 해내야 할 과제이지만 환영할 수는 없는 애증의 관계이다. 


삶은 행복하다 느낄 때 갑자기 비열해지고는 한다. 경고는 서서히, 발화는 강하게... 삶은 한 번도 너그러운 적이 없다. 오히려 거친 삶을 감싸안는 나의 영혼이 삶을 부드럽게 보이게 한다. 삶은 갑이고 내가 을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버티는 것이지 단 한 번도 삶을 완전히 이겨본 적이 없다. 삶은 그렇게 태어났고 나는 우주의 티끌 중의 티끌로 태어났다.


다만 나는 티끌의 삶을 지치지 않고 살아내는 것으로 내 운명을 끌고 나가고 있을 뿐이다. 삶을 이기려고 하는 어리석은 고난은 겪고 싶지 않다. 삶은 물러섬을 모른다. 나는 더 열심히 넘어지고 일어나며 삶을 농락이라도 해보련다. 넘어져서 일어나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삶에 먹혀버리는 것. 나는 지지 않고 살아간다.


내 삶의 에피소드가 줄줄이 엮여서 생의 마지막 문구에 주인으로 살다 갔다는 착각으로 한 줄이 적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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