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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쓰 Jul 04. 2024

사랑의 범위

내게 사랑은 혼란이다. 불확실하면서도 확신한다 믿는 감정에 흔들린다. 사랑을 신봉하는 나의 빛나는 정서 위에 심심찮게 그림자를 만드는 그것은 어디에 존재하는 것인가.


속내를 알 수 없다는 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일까? 속내를 알면 더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 아쉬움일까? 사랑하기 때문에 꾹 눌러놓은 부끄럽고 미안한 흔적들이 있다. 그것은 숨겨져 있고 들키지 말아야 하는 심중에 깊숙이 웅크리고 있다.


사랑을 한다고 해서 상대에 대한 모든 불편한 감정이 정화되지는 않는다. 가슴속에서 뱉지 않은 서운한 말,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뱉을 뻔한 말 모두 그대로 내 안에 있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내 속내를 악착같이 긁어내려는 사람은 무섭다. 고분을 파헤치는 도굴꾼처럼 나의 매장물을 파내어 확인할 수 있는 마음만이 진심이라 믿어지는 것이겠지. 


사랑하는 사람의 밑바닥 속마음을 알고 싶은지 내게 묻는다면 그런 어리석은 질문이 어딨 냐고 바로 타박을 할 거 같다. 상대방의 마음속을 헤집어 보이면 내 마음속도 뒤집어 보여야 하는데 나는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 조금의 악함도 가진 적이 없는가 하는 질문에 먼저 답해야 한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내가 이해하는 부분은 겨우 1프로의 무엇일지 모른다. 그 이외의 것은 어쩔 수 없이 묻어둔다는 의미이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전부를 보고 싶지 않다. 그 전부를 이해할 자신이 없기도 하지만 사랑한다는 마음으로 거북한 냄새를 풍기는 밑바닥 정체를 견디어 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신적인' 것을 탐하지 않으며 '완전한' 행태를 취하고 싶지도 않다. 그저 내 흔하디 흔한 마음을 특별하게 알아봐 주고 아껴주는 사랑을 가진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나의 '인간다움'은 충족된다.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훔쳐보고 싶은 욕망은 신이 우리의 영혼을 훔치는 것보다 더한 도둑질의 충동이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만으로 전부를 사랑할 수 있다면 나는 이미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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