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해요. 못 봤어요. 앞쪽에 버스 피할 생각만 하다가... 제가 나이가 칠십이에요. 운전한 지 3개월인데 이백 벌어가는데... 회사손해를 끼치면 잘려요. 빵빵해주셔서 감사해요. 덕분에 제가 멈춰서 많이 안 긁었어요. 감사합니다."
내 차에 접촉사고를 일으킨 버스 기사님이 반복해서 하시던 말씀이다. 내게 하는 말인지 놀라셔서 혼자 중얼대는 말씀인지도 모르게 아무리 괜찮다고 진정시켜 드려도 기사님은 사고처리가 끝날 때까지 반복했다. 내일부터 비가 계속 올 거라는데 마지막 안간힘을 쓰듯이 바싹 달아오른 태양이 내리쬐고 사고 현장 뒤에 줄줄이 멈춰 서는 차들은 조급해 보였다.
처음 경험해 보는 사고에 당황한 나는 차선을 넘어오면 어쩌시냐고 한 소리는 했는데 사실은 그저 제정신이 아니었을 뿐이다. 멍하니 있다가 어디에선가 보았던 영상이 기억난 듯 폰을 들어 현장사진과 비디오를 찍기 시작했다. 셔터를 계속 눌러대는 동안 쉬지 않고 말을 하고 있는 기사님의 목소리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비엔나소시지처럼 두 대의 사고차량 뒤에 서 있던 차들은 잠시 후에 막혀 있지 않은 중앙차선을 넘어 반대편 차선으로 느릿느릿 이동해 지나갔다. 그것은 마치 작은 물고기 떼가 열을 맞춰 헤엄을 치는듯했고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벌겋게 달아오른 기사님의 얼굴은 뜨거운 날씨 탓인지 놀란탓인지 점점 더 붉어지고 있었다. 터질 듯이 달아오르고 있었다. 붉어지는 만큼 기사님의 놀란 눈동자는 점점 더 떨리고 손은 부들부들, 흘러내리는 흥건한 땀... 자신의 몸상태보다 회사에 알려질 것이 두려운 노인.
오늘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데...라고 생계를 걱정하고 있는 70대 노인의 그 불안함을 보며 모든 것을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현실에서 생계보다 중요한 것이 있을까? 70대 노인이 운전을 해도 되는가에 대한 이성적인 판단은 뒤로 미뤄진 채 기사님과 내가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서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기적은 항상 요란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았음에 감사했다. 버스회사와 사고처리를 하지 않음으로써 한 사람의 오늘 밥줄을 건드리지 않아도 되는 상황만큼 더 감사할 일은 없었다. 연락처를 주고받고 먼저 돌아 가시는 기사님의 오늘 운전이 안전하기를.
내가 만난 키 170 정도의 붉은 얼굴의 그 노인은 사고를 낸 버스기사가 아니라 오늘을 연명해야 하는 한 사람의 연약한 생명체였을 뿐이다.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싶었을 겨우 3개월 된 버스기사의 사고는 우연찮은 신의 장난이었을까. 아니, 어쩌면 신의 가호로 더 큰 사고를 막아주려는 경고였을지도.
오늘도 이렇게 감사하게 하루를 보낸다. 나는 참으로 운이 좋은 개체 중의 하나라는 생각에 안심이 된다. 기사님도 나도 사랑받고 있음을 새삼 확인하는 날이 되었다. 우리의 생존은 내일이 있다는 것. 어제만 해도 우려가 되었던 장마가 온다는 비소식이 새로운 삶의 축제처럼 조금은 반가워진다.
차수리도 비용처리 없이 잘 될꺼니까 청심환이라도 드시라고 전화를 드렸다. 나중에 기사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사모님 버스기사입니다 너무 죄송하고 미안합니다 사모님 너무 고맙고 감사합니다 사모님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기해가 다면는 식사라도 한번 대접할게요
이 분이 사주는 식사는 정말 맛이 있겠구나... 생각하며 답글을 보내면서 시큰해졌다. 삶의 소용돌이는 때론 그 속도를 못 이겨 튕겨 나오는 부산물을 만든다. 나는 오늘 부서져 있지만 온전한 정신이 깃든 하나의 부산물을 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