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에 직접 그린 일러스트를 넣고 싶다고 했으니 멋지게 그려 내고 싶었다. 그림 솜씨가 뛰어나서도 아니고 출판사의 역량을 믿지 못해서도 아니다. 내 글의 느낌과 의지는 내가 가장 잘 알 테니까 부족하더라도 내가 완성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막상 펜을 들고 앉았는데 아이패드 화면이 까맣기만 하다. 글의 전부를 표현할 수 있는 그림은커녕 글조차 떠오르지가 않는다. 펜을 놓고 들어가는 글과 나가는 글을 읽었다. 이미지를 서치하고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이미지 몇 장을 번갈아 보면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그리기 시작했다.
편안함을 모티브로 그려 보기로 한다. 색상은 가능한 부드럽고 감성 있는 그린톤을 선택했다.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종이비행기를 바라보고 서 있는 소녀 곁에는 소녀를 무심히 지켜주는 검은 고양이 한 마리를 놓아주었다. 너무 튀는 그림은 대부분의 사람이 좋아하지 않을 거다 라는 판단으로 그려본 이미지였다.
완성하고 보니 원하는 그림은 나왔다는 생각에 흐뭇했다. 평범하고 특별하지 않고 어디에서나 봤음직한 그림이 그려졌다. 색감이 좋아 부드럽게 눈에 감겼다.
대중적이라고 여겨지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
완성된 그림을 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처음 출판을 목적으로 글을 추가하기 시작했을 때의 내 마음이 떠올랐다. 뚜렷한 글의 주제가 보이지 않아 반드시 편집을 하고 글을 수정해야 한다고 했던 출판사의 기억도 비집고 들어왔다. 나는 그 의견에 반감을 일으켰고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겠다고 결정했었다.
자극적인 주제로 관심을 끌고 사실의 나열 같은 그런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삶 자체보다는 삶을 살아가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내가 어떻게 괴로움의 시간을 지나가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사유가 내게는 그 중심에 있었으며 그 자체를 쓰고 싶었다.
일러스트를 바꾸기로 결정했다. 내가 원하고 나를 직관적으로 투영하며 글에 들어있는 사유의 목적을 드러낼 수 있는 정직한 그림을 그리기로 맘먹었다. 내가 나를 인정하고 존중하지 않는데 누구라고 책의 일러스트를 이해하고 글을 이해해 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색상은 좀 더 짙어졌고 행위는 좀 더 적극적인 그림으로 다시 그렸다. 내가 풀어내고 있는 사색의 말들이 그림에서도 이해가 되기를 바라면서. 완성된 그림을 편집장에게 보냈다. 역시 먼저 그린 그림보다 맘에 들어했다. 그림을 정말 잘 그리시네요 라는 기분 좋은 멘트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