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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쓰 Sep 28. 2023

시각의 차이

어떤 여자가 고양이 한 마리를 기르고 있다. 여자는 고양이를 운동시킨다고 하면서 고양이와 조금 이상한 점프놀이를 한다. 고양이를 가볍게 벽 쪽으로 던지면 고양이는 벽을 딛고 다시 바닥에 착지를 하는 것이다. 고양이는 다시 찾아오고 여자는 다시 고양이를 벽 쪽으로 던진다. 


예전 집 주변에는 유독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중 검은테두리의 베레모를 쓴 할아버지는 매일 오전 일찍 개 한 마리와 산책을 했다. 사이즈가 손바닥 세 개를 합친 정도의 작은 개였다. 개는 호기심이 많아서 산책로를 똑바로 걷는 법이 없었다. 때때로 좌우 구석구석을 다 뒤지고서야 쫓아갈 기세로 주인을 따르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는 자주 개 목줄을 세게 당겨 길 한가운데 끌어다 두고 야단을 치려는 듯 가만히 쳐다보다가 다시 걷곤 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개는 움직이지 않고 침묵의 타이름을 들었다. 


고양이를 훈련시키는 여자는 친구들에게 너무 학대하는 거 아니냐는 놀림을 받았단다. 할아버지를 쳐다보던 나는 개에게 자유를 주지 않는 고약한 주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보인 행동들은 그럼 학대였을까?


여자는 바깥생활이 없는 고양이가 가엾어 좀 더 고양이다운 움직임이 많은 놀이를 찾았고 가느다란 몸집에 탄탄한 근육을 길러주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집에 갇혀 있다가 나온 많은 개들은 자제력이 없다. 할아버지는 아마 천방지축 자신의 개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해침을 당할까 우려해 예의를 가르치고 싶었는 지도 모른다. 그들의 의지가 어떻든 동물들에게 더 부드럽고 상냥하게 대해야 된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키우는 사람들의 마음과 동물들의 마음이 다르고 보는 이들의 마음이 또 다르다.


나의 시각에서 너를 보는 것, 너의 시각에서 나를 보고 우리를 보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느냐의 문제이다. 시각의 차이는 타인의 무시로 곧장 통하기도 하기 때문에 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그래서 타인을 위한 칭찬의 말도 우려의 말도 때론, 삼켜버리는 게 더 나을 때도 있다. 나의 감정에 젖어서 타인을 바라보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노력이 중요하다. 시각의 차이를 극복하면 대신 더 큰 이해와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값진 보상이다.



“생각이 먼저 담겨 그림을 그릴 때가 있어요.

당신에게서 나의 모습을 발견할 때 펜대를 들기도 하죠.

진심을 담아 짧은 글과 그림들을 올려 봅니다.”


일러스트: @bona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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