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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쓰 Oct 02. 2023

포기

예전의 나는 포기했다는 말을 하기 싫어 뭔가를 시작했다는 말조차 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왠지 낙오자 낙인이 찍히는 느낌이고 시작만 있고 끝은 없는 쓸모없는 사람으로 되어버리는 건 아닌가 소심한 생각 때문이었다.


내가 승마를 배우고 싶다고 말한 지가 꽤 지나자 알고 지내는 동생이 내게 물었다. 

"언니, 승마 시작했어?"

"아니, 아직 알아보고 생각 중이야..."

나는 승마를 배우기 위해 가까운 승마장을 서치하고 스케줄도 맞췄다. 관절이 약한 류마티스관절염이 있는 신체적인 약점을 고려해서 먼저 기초적인 요가를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내 의지대로 몸이 움직여 주지 않아 고민의 시간이 길었고 결국 고심 끝에 승마는 포기해야 했다. 내게 물어보는 동생에게는 "포기했어."라고 해버리면 그만인데 그 말을 못 했다.


키가 큰 편이라 5학년때 학교 농구코치가 나를 선수로 욕심을 내서 농구부에 데리고 들어갔다. 농구는 꽤 재밌었다. 내가 쏘아 올린 공이 찰랑하고 네트를 통과할 때 그 기분이 너무 좋았다. 누구보다 일찍 체육관으로 쫓아가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부모님이 반대를 했고 나 역시 농구선수로 살아갈 인생은 꿈꾸지 않은 탓에 중도에 접기로 했다. 나는 체육관문을 나설 때 코치에게 세게 빰 한 대를 맞았다. 농구를 그만둔다는 이유에서였다. 집에 가서 말을 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시간이 한참 지나서 말씀드리지 않았을까. 내가 그때 말씀드렸다면, 분노를 참지 못하셨을 것이다.


포기하는 일도 나의 중요한 선택이다. 남의 눈치를 보거나 뺨을 맞아야 할 일이 아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고민했다면 나의 포기도 꾸준히 일구어낸 성과만큼 존중받아야 한다. 나는 무엇이든 그냥 버려지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포기하기 직전까지의 모든 나의 노력은 고스란히 나의 재산이 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어느 시점에서 내 인생의 자양분이 될지 모를 일이다. 조카 한 명이 학원을 졸라서 보내줘도 성적이 오르지 않고 끝까지 다니는 법이 없다고 자주 야단을 맞는다. 그래도 꾸준히 그만두고 꾸준히 시도하는 아이다. 나는 열심히 했다는 조카의 말을 믿는다. 그 아이에게 포기란 새로운 시작일 뿐이니까.

"하은아, 고모는 너의 포기를 지지한다!" 



“생각이 먼저 담겨 그림을 그릴 때가 있어요.

당신에게서 나의 모습을 발견할 때 펜대를 들기도 하죠.

진심을 담아 짧은 글과 그림들을 올려 봅니다.”


일러스트: @bona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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