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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쓰 Sep 05. 2023

그림 그리는 류마티스 동거인

2. 엄마,  한약

병명을 확정받고 병원을 나서면서 가장 먼저 생각났던 사람은 엄마였다.

"엄마!"

"응, 딸?"

"엄마..." 전화는 걸었지만 놀랄 엄마를 생각하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 있어? 우니?"

"엄마 나 류머티스래... 그동안 내가 좀 아팠어.. 병원에 왔는데 그렇대."

엄마는 어쩌니. 불쌍해서 어쩌니.. 그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엄마, 나 병원처방은 받았는데... 한약을 먼저 좀 먹어볼까 해. 약이 있을까?"

겨우 진정이 된 엄마가 내 말에 응했다.

"그래, 그래, 아빠가 생전에 남기신 처방전이 있어. 예전에 아가씨 한 명이 간호사였는데 류마티스 치료를 받으러 왔었거든. 그거라도 일단 먹어보자. 많이 아팠지?... 나는 그것도 모르고..." 힘든 대화를 길게 하기는 힘들어서 " 엄마 걱정하지 마.. 진통제도 주고 해서 좀 나아질 거야. 벌써 덜 아파. " 짧은 인사를 하고 통화를 끊냈다. 오늘부터 엄마의 기도는 더 늘겠구나... 생각하니 그 미안함으로 발걸음이 더 무거웠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요즘 평생 처음으로 취미생활을 즐기시는 중이다. 게이트볼에 열심히며 수영을 좋아하신다. 워낙 부지런한 엄마는 당신이 건강해야 자식들에게 폐가 안된다며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이신다. 언제나 아빠의 뒷바라지와 자식들을 위한 따뜻한 밥을 사명처럼 여기면서 그저 열심히 살아온 엄마. 취미를 즐기신다고는 하지만 내가 그 마음에 더 짐이 된 건 아닌가 때론, 엄마가 너무 애처롭고 죄송하다. 한약을 복용했던 기간 동안 엄마는 항상 구매하는 한의원에서 열 가지가 넘는 약재를 하나하나 직접 씻었고 그중에서 100여 개의 생강도 매번 직접 다듬어서 넣고, 약이 다 될 때까지 불옆을 지키다가 택배로 보내셨다. "엄마, 거기 탕제 하는 한의원이잖아. 다 씻어서 달여주니까... 그냥 맡기세요." 그렇게 말해도 약을 내게 보낼 때마다 늘 몇 시간을 준비하는 일에 매달리셨고, 아빠의 처방과 엄마의 정성으로 지은 한약은 한 달에 한 번씩 내게로 보내졌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 몇 해가 되어도 아빠의 처방전은 우리 가족에게 보험처럼 존재했다. 누군가는 한약을 위험하다 할 수도 있겠지만 지프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당시의 나에게는 첫 번째 선택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일 년을 넘게 한약을 복용했고 간수치는 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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