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야를 뽐내던 정열을 잃은 해
가늘디 가는 살들을 쪼개 가루가 되었다.
바스러져 공중에 흩뿌려진 입자가
곱게 여물었다.
점잖은 향연이다.
먼 나라 심해의 고대 유적 같은 도시
흐릿한 아랫도리를 숨기고
얼굴만 빼꼼히 내밀고 있다.
떠오르는 건지
가라앉는 건지
섬망 같은 혼탁한 도시
앙상한 몰골의 볼품없는 거인족
벗겨진 그레이빛 속살을 입고 있다.
거리끼게 우뚝 서
벌린 눈을 오므리게 한다.
여름이 사라져 가던 어느 낮에 저 멀리 빛이 머무는 어느 곳, 아파트가 솟아난 한 때의 광경에 빠져 지은 시입니다. 매일 보던 광경이 그날따라 낯설고 불투명했나 봅니다.
일러스트: instagram.com/bona2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