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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쓰 Oct 22. 2023

약속 없는 생활

두 달 전인가 평소에 약속이 너무 많아 줄여 가고 있다는 내용의 유튜브를 본 적이 있다. 나도 소모적인 약속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비슷한 생각인지 궁금해서 그 내용을 보게 되었던 것 같다. 내용이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유투버는 거절하지 못한 너무 많은 약속에 지쳐 있는 듯했다.


약속이란 지금의 내 인생에서는 거리가 좀 멀다. 가끔 있는 행사초대나 예약하는 생활에 더 익숙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자주 만나고 싶은 친한 친구가 주변에 살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일부러 지인의 연을 넓히지는 않는다. 약속을 위한 약속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약속이 없는 날이 많다고 해서 외롭고 소외감을 느낀다거나 불안하다거나 하지도 않다. 그랬다면 아마도 안절부절 전화기를 붙들고 3일어치 약속을 잡아야만 속이 후련했을지도 모른다. 수다가 좋고 연애가 좋던 20대까지만 해도 단 하루도 집에 머무는 날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지금의 나는 일종의 집순이다. 꼭 필요한 약속이 아니면 외출을 하지 않는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약속은 하루에 한 번으로 국한한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에 불만이 없고 가장 편안함을 느낀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나의 집이 아지트이며 공방이며 놀이터이다. 작은 작업실을 계약할까도 생각했지만 방 한 개와 거실의 넓은 테이블이 내 작업공간이 되면서 집에 머무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많아졌다. '집'이라는 거리낌 없이 나를 털어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내게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무엇에 시간을 쏟는가에 방점이 있다. '어디에서' '누구와'도 중요한 문제이지만 '무엇'이 내가 원하는 공간에 있으니 약속을 잡고 외출하는 의미가 없는지도 모른다.


사실 내가 원하는 전시회나 공연을 예약해서 보기에도 바쁘다. 가끔 있는 초대는 소규모의 사람들이 비슷한 목적으로 모이기 때문에 목적을 달성하면 다들 슬그머니 사라지는 형태라 내 속주머니를 털어 보이느라 필요 없는 말에 진을 뺄 필요도 없다. 그나마 거절의 불편함도 없는 초대들이니 마음이 편하다. 매일 다양한 사람을 만나서 매일 똑같은 얘기를 해도 좋은 시절이 있었다. 시간을 죽인다 라는 표현에 꼭 들어맞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흘러 늘 나를 바쁘게 찾던 사람들은 마치 꿈처럼 세월에 쓸려 내려가고 나에게 남은 건 친구 몇과 공을 들여 얻은 소중한 사진, 장소의 기억과 가족이다.


약속과 친구는 별개의 문제이다. 좋은 친구와 좋은 시간을 갖는 일은 언제나 필요하다. 그 점에 있어서는 조금 불행하다 할 수도 있겠다. 마음 깊이 좋아하는 친구 두 명이 모두 멀리 살아서 통화로만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친구 한 명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언니인데 캐나다에 거주 중이고 또 한 친구는 세 살이 적은데 아이들 학교 때문에 제주에 살고 있다. 그 친구는 서울토박이로 제주도에서 처음 생활을 시작할 때에 심심하다고 노래를 하더니 지금은 육지에만 나와도 멀미가 난단다. 둘 다 생활에 진심을 다하는 사람들이다. 존중하고 사랑한다.


혼자 남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거미줄 같은 약속에서 멀어져 보니 좋았다. 약속에서 멀어지니 빈 공간이 열렸다. 자주 연락함으로써 친구관계를 유지했던 사람들은 연락이 줄어들며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혼자 남는 시간이 하루도 부족했던 나의 생활에 여유를 가져왔다. 생활이 열리면서 스트레스는 줄어들고 마음을 돌보는 다른 시간의 문이 열렸다.


잦은 만남보다는 좋은 대화를 할 수 있는 관계를 맺으면서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믿는다. 그물망 같은 약속의 관계에서 벗어나 나만의 공간에 숨을 불어넣는 일도 반드시 필요하다. '혼자'라는 단어가 꼭 외로움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고독을 즐길 때 맛볼 수 있는 인생의 깊이가 분명히 존재하니 그 '고독'이란 것도 한껏 즐기고 산다.



“생각이 먼저 담겨 그림을 그릴 때가 있어요.

당신에게서 나의 모습을 발견할 때 펜대를 들기도 하죠.

진심을 담아 짧은 글과 그림을 올려 봅니다.”


일러스트: @bona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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