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함을 주는, 평범한 문장들
만약 당신이 나처럼 개개인이 공동의 이익을 위해 관대하게 이타적으로 협력하는 사회를 만들기를 원한다면 생물학적 본성으로부터 기대할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을 경고로 받아들이기 바란다. 우리는 이기적으로 태어났다. P.48 '이기적인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이 질문은 다윈의 진화론 이후로도 멈추지 않고 과학, 철학,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탐구되어 왔다. 도킨스는 진화론의 논의를 한 단계 더 밀고 나가,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타적이 아니라 이기적으로 태어났다고 주장한다. 이 대목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은 맹자와 순자의 인간 본성 논쟁이다. 맹자는 인간이 본래 선한 본성을 지녔다고 보았고, 순자는 악한 본성을 타고난다고 보았다. 물론 도킨스의 유전자 이론과 동양 고전의 본성론이 정확히 일치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사회적 악을 마주할 때마다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 있지? 양심이 없나?”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인간의 본성에 대한 근원적 의문일 것이다.
도킨스는 “이기적인 유전자”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이 본성적으로 이기적이게 태어나지만 학습과 경험, 사회적 환경을 통해 이타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본다. 책을 읽으며, 나는 그가 주장하는 바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졌다. 우리는 흔히 갓 태어난 아기를 천사 같다고, 가장 순수하고 고귀한 존재라고 여긴다. 그것은 인간 생명에 대한 본능적 존중에서 비롯된 감정이지만, 사실 아기는 아직 어떤 도덕적 본성도 드러내지 않는다. 울기만 해도 배고픔과 불편함이 해결된다는 사실을 아기가 이미 알고 있다면, 여전히 순수하고 선한 존재라고만 할 수 있을까? 산부인과에서 아기들이 일제히 울음을 터뜨리고, 간호사가 한 명씩 달래도 다시 울음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면, 본능적으로 자신을 돌보게 하는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실감하게 된다. 이기적 본성이란, 어쩌면 생존을 위한 가장 원초적인 에너지일지도 모른다.
만약 인간이 본래 이타적으로 태어난다면, 아기들은 차례를 기다리거나, 더 힘든 아기를 위해 울음을 참았을지도 모른다. 내 생각이 다소 억지스러울 수 있지만, 다행인 것은 아기들이 자라며 학습과 깨우침을 통해 이타적인 행동을 배워간다는 점이다. 도킨스의 말처럼, 인간은 본성의 한계를 넘어 사회적 경험과 교육을 통해 더 나은 존재로 성장할 수 있다.
‘인간의 선한 본성을 믿는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때로 우리는 그 믿음이 배신당하는 순간을 목격한다. 모두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가장 약해 보이는 이가 실은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는 범인이었던 영화 속 장면처럼 말이다. 본성에 대한 믿음은 때로는 잔인한 반전을 맞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기적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반드시 절망적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 사실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더 적극적으로 교육과 공동체 의식을 키우고, 이타적 행동을 학습하는 데 힘쓸 수 있다. 본성의 한계를 자각할 때, 사회와 지구는 더 발전하고 평화로워질 수 있다는 희망도 동시에 품을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이기적으로 태어났다”는 이 문장 안에, 인간이 더 나은 존재로 변화할 수 있다는 믿음의 씨앗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