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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미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일상의 소고 I

by 보나쓰

엄마는 동년배의 지인들보다 활동적이고 밝게 생활하는 분이다. 현재는 족저근막염이 생길 정도로 게이트볼에 열심이고 거르지 않고 매일 수영을 한다. 집에서 쉬면 뭐 하냐며 아르바이트도 나가신다. 성당 레지오 활동도 하기 때문에 젊은 나보다 더 바쁘고 낭비하는 시간이 거의 없다. 엄마의 하루는 나의 일주일처럼 흘러간다. 한 번 다녀가시라고 해도 시간이 없어 못 온다는 분이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혼자 계시는 엄마가 늘 불안하고 걱정이 되어도, 내 생활에 쫓기다 보면 내 일처럼 엄마의 생활을 신경 쓰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엄마가 자신의 생활을 건강하게 잘 꾸리고 있어 안심하는 마음이 있었다. 혼자만의 시간에 우울하고 서글픈 날이 왜 없었을까 싶지만 엄마는 통 내색을 하지 않으니 짐작할 뿐이다.


엄마는 작고 단단한 사람이라고 늘 생각했다. 작은 체구에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 그런 엄마도 아빠의 부재를 감당하기는 어려웠나 보다. 집안의 여러 일을 겪으면서 엄마는 자신의 것을 스스로 만들고 더불어, 가질 수 있는 것들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강해졌다. 나는 그 마음이 엄마를 많이 외롭게 했을 거라고 짐작한다. 스무 살부터 미우니 고우니 해도 지켜주는 한 남자의 그늘에서만 살던 엄마가 혼자 남게 되었을 때, 엄마는 한겨울 들판에 홀로 버려진 들개처럼 자신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극도의 불안감으로 자신이 처한 살풍경한 세상에서 홀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혼자 짊어지게 한 건 결국 우리 자식들의 부족함이었지만, 살아내야 하는 건 엄마만의 몫이었으니까. 엄마가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했을 때, 나는 정색을 하고 반대했다. 단지, 돈을 버는 일이라고만 생각해서 고생을 왜 사서 하시냐고 했다. 그냥 취미생활만 하고 쉬면서 여생을 보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내게 숨기면서까지 아르바이트를 지속했다. 적게나마 들어오는 급여에서 느끼는 엄마의 성취감과 세상으로 이어지는 존재감이 무엇보다 필요했다는 걸 내가 이해하게 된 건 나중일이다.


엄마는 자식들에게 기대지 못했다. 엄마는 스스로에게 각목을 매달아 지지대를 만들고자 애썼고 나는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지냈다. 어쩌다 한 번 다녀가는 자식을 끌어안고 인사하며 눈물을 그렁대면서도 떠나가는 차를 향해 두 손을 앞으로 뻗어 단단해 보이려는 듯 손을 크게 흔들며 웃어 보였다. 그런 엄마는 언젠가부터 전자제품이나 가구를 바꾸지 않는다. 김치냉장고를 바꾸자고 해도 아직 쓸만하다면서 손사래를 치신다.


정말 망가지거나 쓰임이 다했다고 느껴지는 물건이 아닌 경우에는 아무것도 새것을 들여놓지 않는다. 그래서, 엄마의 집에는 온통 오래된 것들 뿐이다. 삼 년 전쯤에 내가 우겨서 마련해 드린 스타일러와 냉장고, 장롱을 빼고는 헌 것투성이다. 세월이 가면서 엄마가 자꾸만 오래된 물건들의 냄새와 형태를 닮아간다. 엄마는 이제 집도 내놓고 싶어 한다. 좀 더 작은 집으로 옮겨 생활하고 남는 돈으로 사시다가 자식들에게 얼마라도 더 남겨주고 가고 싶단다. 엄마는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나는 이제 엄마에게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당신 마음이 원하는 대로 도와드리고 싶을 뿐이다. 치매 같은 무서운 병에 걸리지 않고 평안하게 눈을 감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마지막 소원만은 이루어지길 바라면서. 엄마는 자식에게 폐를 주는 일 없이 충분히 잘 살고 계신다고 말하는 내게 고맙다고 하신다. 죄책감이 해일처럼 밀려와 나를 쓸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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