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소고 I
새벽에 바닥을 향해 옆으로 넘어지는 사고로 광대뼈 쪽의 인대치료를 받은 지 한 달이 되었다. 얼굴에 든 멍도 거의 가라앉고 이제 숨 좀 돌리나 했는데 눈앞에 실 같은 검은 그림자가 없어지지 않는다. 눈동자의 움직임에 따라 엉킨 실 같은 그림자가 어른거리는데 사고 이후에 생긴 것이다. 갑자기 비문증이 생긴 것 같아 병원에 갔고, 망막을 살펴보던 의사는 자신의 눈에도 보이는데 없어질 거 같다고 말했었다. 그 말에 안심을 하고 신경 쓰지 않았는데 그림자가 점점 퍼진다. 그러면서 흐릿해지는 것도 같은데 때때로 자신의 그림자를 하나 더 만들기도 하는 거 같다.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도 글을 쓰는 화면을 응시할 때 조금씩 흔들리며 어른거리는 통에 집중이 안된다. 예민할 때는 짜증이 난다. 소용없는 줄 알면서 자꾸만 눈을 비비고 시야를 멀리 둬보기도 하면서 급기야는 쓰던 글을 멈추게 된다. 작게 생각했던 일이 점점 커지면서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오늘은 오픈시간에 맞춰 다른 안과를 가볼 생각이다.
내가 더 걱정되고 예민해지는 이유는 사실 글 때문이다. 눈에 큰 문제라도 생긴 거면 어쩌지 하는 염려는 당연하고 글을 쓰기가 버거운 상황이 될까 염려가 된 것이다. 다시 글을 쓰게 됐던 때가 생각이 난다. 그때만 해도 책을 출간하고 작가생활을 한다는 건 계획에 없던 일이라 가볍게 일기처럼 시작했던 때였다. 그런 글이라도 쓰면서 뒤숭숭하고 갈피를 잡지 못했던 마음을 돌아볼 수 있었다. 글은 내게 따뜻한 밥 한 공기와 같았고 장거리를 뛰는 마라톤 선수에게 드문드문 건네지는 물과 같았다.
글을 쓰면서 점점 더 드는 생각은, 솔직하게 내 인생에 대해 털어놓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정화하고 전달하느냐에 작가로서의 의무와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에세이는 소설이나 다른 인문서적들과 달라서 다양한 결의 글을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자칫하면 아무나 쓸 수 있는, 아무 글이 될 수 있다는 의견에 나는 공감한다. 글은 아무나 쓸 수 있지만, 독자를 생각하면 책은 아무나 내면 안된다. 작가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래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진실이다.
어떤 사람이 온라인에서 책을 구매하는데 마땅히 읽고 싶은 책이 보이지 않더란다. 그는 제목을 보고 결정하기로 했고 책들 중에 가장 근사한 제목의 에세이를 구매했다. 그는 쓰레기책을 샀다고 말했다. 글도 엉망이고 내용은 더 볼 게 없었다고 했다. 너무 기가 막혀서 출판사를 찾아보니 돈만 내면 책을 내주는 곳이었고 자신은 이제 책을 고를 때, 특히 에세이는 출판사를 보고 고른다고 했다.
그 책의 문제는 출판사가 아니었지만 결국 좋은 책을 고르기 위한 선택으로 대형출판사 쪽을 선택해서 실패확률은 줄이겠다는 것이다. 우리 같은 무명의 작가는 대부분 규모가 작은 출판사를 통해 책을 배출하고 있다. 그러니 그 내용을 듣는 순간 가슴이 쿵 하고 무너졌던 건 당연했다.
내 글이 아무 글이 되지 않기 위해서 나는 더 많은 책을 읽고 글을 써서 공유하고 비판을 받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각오를 한다. 점점 더 책을 쓰는 마음은 무거워진다. 다음 출간할 책을 준비 중이기도 하고 글을 쓰는 일도 끊임없는 훈련의 연속이라 보다 많은 글을 써봐야 하는 현실에서 내 눈에 생긴 문제가 가벼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마음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