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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쉬 마켓과 피폴라

변해가는 인도, 첸나이

처음 첸나이에 가서 살 때만 해도 손질된 생선을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가게가 거의 없었다. 항구 도시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처럼 유통이 잘 되고 마트가 즐비한 나라가 아니다 보니 당연했다. 그래서 처음 몇 해 동안은 직접 첸나이 항구로 가서 생선과 해산물을 사오곤 했다.


처음 첸나이 항구에 갔을 때는 정말 신기하기 그지 없었다. 항구 근처에 그야말로 갓 잡은 생선과 해산물을 파는 생선가게들이 즐비했고, 우리 같은 외국인들을 위해 저렴한 가격에 손질까지 해 주는 서비스가 되어 있었다. 비린내가 진동을 하고, 도깨비와 같은 인도의 신들이 곳곳에 그려져 있고, 생선 구정물이 사방에 가득해서 장화를 신고 가라는 충고를 듣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었다. 


오징어, 낙지, 갈치, 새우, 조기, 게 등의 해산물을 가득 싣고 돌아오면, 그야말로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한 번의 손질을 끝냈지만 깨끗한 물로 다시 한 번 잘 씻은 후 야무지게 소분해서 냉동고에 저장하면 한 동안 해산물 걱정은 없다. 그날 아침에 잡아온 해산물은 금세 팔려버려서 아침 일찍 서둘러 가야 했고 제법 거리가 있는 편이라 모든 일을 마치면 점심 시간이 훌쩍 지나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 후로는 첸나이 항구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우리집 근처 바닷가에서 운영하는 작은 생선 가게에서 필요할 때마다 소량씩 구입할 수 있었고, 생선과 해산물을 손질해서 집까지 배달해주는 서비스도 생겨났다. 그리고 마지막 해에는, 일년 내내 유용하게 잘 다녔던 피폴라가 생기면서 생선과 닭고기를 사는 일이 아주 쉬워졌다.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소 비위생적일 수 있는, 고기와 뼈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거나 생선 위에 파리가 한 가득 앉아 있는 정육, 생선 가게들과 달리 깔끔한 시설과 위생적인 환경을 자랑하던 피폴라는, 제법 합리적인 가격에 원하는 제품을 바로 바로 눈앞에서 손질해서 포장해 주는 가게였다. 손질하는 모습을 유리 너머로 바라볼 수 있어 좋았고, 원하는 부위, 원하는 재료를 원하는 방식으로 손질해주니 참 좋았다. 이런 곳이 생기다니,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게다가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면 원하는 시간에 배송도 해 주었는데, 아이스팩을 적절히 활용해서 신선한 상태로 배달이 잘 되었다.


내가 첸나이에 거주했던 4년이, 길다면 길고 또 짧다면 짧은 시간이겠지만, 겨우 2G가 터지던 첸나이에 LTE가 정착되고, 모든 게 아날로그였던 그곳이 디지털화로 순식간에 바뀌는데 3,4년은 생각보다 짧았다. 분명히 모든 게 쉽고 편해졌지만, 정겨웠던 아날로그 생활과 내가 감탄했던 인도의 색깔들이 사라져가는 듯해서 한편으로는 아쉽고 또 마음이 허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곳의 빠른 변화와 발전(?)에 일조한 것은 나와 같은 외국인들이니, 알 수 없는 죄책감마저 들었다.


다음에 다시 이곳을 찾는다면 또 얼마나 변해 있을까, 이 거리를 알아볼 수는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 보면 지금 이 시간이 더욱 소중하다.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피쉬 마켓을 한 번 더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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