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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오라 May 21. 2021

떡이냐? 잡채냐? 너의 정체를 밝혀라!

시간이 벌써 밤 9시다.


'아, 귀찮아... 

빨리 마무리하고 쉬고 싶은데 내가 이걸 왜 사 왔을까... 그냥 반조리나 완제품 샀으면 편했을 텐데....'




돌아오는 주말이 딸아이 생일이다. 그런데 캠핑을 가게 돼서 미역국을 끓여서 갈 생각이었는데 미역국 하나만으론 허전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딸아이가 좋아하는 잡채도 해서 가져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을 보러 생협엘 갔다. 당면이랑 미역이랑 필요한 것들을 몇 개 집었을 때 냉동실 안에서 완제품 잡채가 눈에 보였다. 


'저거면 한 끼 딱 먹겠는데 그냥 저거 살까?, 아니야! 그래도 생일이라고 해주는 건데 엄마표로 해줘야지... 못해도 내가 해봐야지'


잠시 완제품에 마음을 뺏기긴 했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며 잡채랑 미역국 재료만 쇼핑 바구니에 담아 결제를 했다. 


장을 보고 집에 들어갔을 땐 이미 저녁시간. 그나마 저녁거리를 생각해두고 준비하고 나갔으니 다행이었다. 

부랴 부랴 아이들 저녁을 차려주었고 설거지를 끝마쳐가고 있을 때쯤 사다 놓은 잡채 재료에 시선이 갔다

아까 봤었던 완제품 잡채가 떠오르며 한숨이 절로 나왔다. 보통은 설거지 마무리하면 일과가 끝나가서 마무리만 하면 되는데 다시 시작이란 생각에 귀찮고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직 캠핑 짐도 다 싸지 못했는데 할 일이 태산이란 생각에 일찍 자긴 글렀구나 싶었다. 


그래도 잡채를 보며 좋아할 딸아이의 모습에 마음을 가다듬고 비장한 결심을 한 듯 핸드폰 버튼을 눌러 전화를 걸었다.


'엄마! 잡채 하려고 하는데 순서 다시 알려줘 봐 봐'


우리 가족은 잡채를 좋아하지만 내가 해준 적은 딱 한 번뿐이다. 그것도 몇 년 전 딸아이 생일에 친구를 초대해 작게나마 파티를 해줄 때였다. 그때는 인터넷에 검색해 레시피를 찾아서 만들었었는데 이번엔 엄마표 레시피로 도전하고 싶어 엄마한테 물어본 것이다. 애들이 할머니표 잡채를 좋아해서 만들어보고 싶었다.


당면은 먼저 물에 불려놔서 야채를 꺼내 하나씩 손질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당면 삶을 물이 끓어올랐다

엄마의 레시피는 당면을 삶을 물에 어느 정도 간을 해놓고 삶는 레시피였다.

간장, 설탕, 식용유등 엄마가 설명해준 대로 양념을 넣고 물을 끓였었고 물이 끓자 불려놓은 당면을 넣었다.


불린 당면이라 금방 익을 거라는 엄마 말이 떠올라 몇 번 휘휘 뒤적거리고 면을 빼려고 했는데 혹시 몰라 익었는지 먹어보았다. 아직 안 익은 느낌에 살짝 더 끓여 면을 빼주었다. 

그리곤 한 김 식게 쟁반에 펼쳐 놓았다. 


야채를 하려다가 문득 후추를  빼먹은 게 생각이 나서 후추를 뿌려서 섞어주려 했는데 뭐지? 면이 붙어서 떨어지지를 않았다. 엄마가 식용유를 넣어서 붙지 않을 거라 했는데 이상했다. 

그때 참기름 넣고 섞어주지 않은 게 떠올라 부랴 부랴 참기름을 넣고 섞어주려 했다.

젓가락이랑 수저로 뒤적여주려는데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일회용 장갑을 꺼내 끼고 면을 흩트려놓으려고 하는데 만지면 만질수록 한 뭉텅이가 돼서는 말 그대로 떡이 돼가고 있었다. 


섞으려고 면을 들어 올리면 한 덩어리가 돼서 따라와 팔이 아프기 시작했다.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고 이 상황이 웃기기까지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딸이 '엄마 힘내! 살릴 수 있을 거야' 하는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안 되겠다 싶어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답답했던 엄마는 영상통화로 전화를 해 이 상황을 보시곤 어이없어하시면서 웃으셨다. 


엄마! 이거 봐~ 완전 떡이 됐어~ 

너무 많이 삶아서 그런 거 아냐?

아냐~ 먹어봤는데 안 익어서 조금 더 끓이긴 했는데 많이 안 삶았어~

이상하다! 요즘 당면은 안 부는데

이제는 뚝뚝 끊어지기도 하네?
엄마! 이거 못 살리겠지?



잡채면인지 떡인지 모를 정체불명의 덩어리를 흩트리려고 집어 올리면 한 덩이로 따라오는 당면을 보고 엄마한테 이야기를 한다. 



전화기 속에서의 엄마, 옆에 딸아이, 그리고 나까지 우리 세 모녀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 당면 덩어리를 보고 한참을 웃었다. 


엄마! 안 되겠다. 이건 버려야겠어. 당면만 사 와서 다시 해봐야겠다. 이번엔 잘해볼게!


그렇게 엄마한테 큰소리를 치고 동네 마트 문 닫기 전에 부랴부랴 나가서 당면을 사 왔다. 


이번엔 실패하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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