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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오라 Dec 09. 2021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새로운 시작과 끝

약을 먹지 않아서일까.. 자꾸만 잠이 깬다.

악몽을 꾸다가 깨기도 했고.. 화장실이 급해서.. 이번엔 극심한 갈증에 잠이 깼다.


입안이 침 한 방울 나오지 않아 쩍쩍 갈라지고 건조한 느낌에 급히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컵에 따랐다. 벌컥벌컥 들이켤 줄 알았는데 의외로 몇 모금만 마셔 건조한 입안만 젹셨다. 그러다 문득, '아! 입도 완전히 다물어지지 않아 입안이 메말라 이토록 건조해졌나?'




지난 11월 25일. 나에겐 잊힐 수 없는 날이 되었다.

좋은 일과 좋지 않은 일이 동시에 일어났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나의 첫 책이 세상에 나온 25일.

물론 출판사에서 확정한 출간 날짜이다. 바쁜 시기에도 힘써주신 출판사 덕분에 정해진 날짜보다 며칠 일찍 온라인 서점에 등록되긴 했었다. 그래도 책에도, 세상에도 공식적으로 태어난 날이 25일이라고 기록됐다.


요즘은 작가가 발 벗고 나서서 내 책을 알려야 한다.

힘들었지만 진심을 다해 쓴 책이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 작가의 의도를 알아주기를.. 작가와 공감해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하루에도 수십만 권의 책이 쏟아져 나오니 초반 홍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던데  그 중요한 시점에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11월 25일 오후부터 두통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통증은 심해졌고 약을 먹어도 듣지 않았다. 다음날부터는 어지럼증과 메스꺼움이 더해져 그야말로 침대에 누워서 일어날 수도 없을 지경이 되었다. 화장실도 겨우 일어나 다녀오고 밥도 먹지 못했다. 누워있다 일어나면 세상이 온통 빙글빙글 돌아갔다. 나의 모든 역할들이 정지되어버렸다.


그다음 날인 토요일. 신랑과 근처 병원에 갔더니 긴장성 두통을 넘어 후두신경통이라는 말을 들었다. 치료를 받고 약을 먹으니 그나마 살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여전히 증세는 계속 이어졌다.  되도록이면 응급실은 가지 말자. 이렇게 살았는데 자가면역질환의 희귀병을 앓고 있기에 그 부분도 신경이 쓰여 다니던 대학병원 응급실에 갔다. 코로나가 더 확산하는 시기라 응급실에서의 진료도 순탄치는 않았다. 엄청난 대기시간을 거쳐 진료와 검사를 해보니 다행히도 머리엔 이상이 없으며 재발도 아니라는 거였다. 그래도 증세는 있으니 외래 날짜를 잡아 주었다. 그날부터 왼쪽 귀에 통증이 느껴졌기에 진료볼 때 얘기하니 이비인후과 외래도 같이 예약해주었다.


주말을 지나 월요일이 되었다. 눈을 뜨니 귀가 엄청나게 아팠다. 귀 주변은 퉁퉁 부어올랐고 안쪽에도 부은 건지 빵빵한 느낌도 들고 외관상으로도 심상치 않은 조짐이 보였다. 신랑과 동네 이비인후과를 가니 대상포진이 귀로 온 것이라며 심하면 큰 병원에 가보라고 소견서를 써주셨다.


'대상포진? 그것도 귀로 오는 귀 대상포진이라고?'


몸에 수포 나고 아픈 그런 것 줄로만 알았다. 귀로도 오고 머리 쪽에도 올 수 있는데 가장 안 좋은 유형이라고 한다. 급한 마음에 다시 달려간 대학병원 응급실.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해 격리 폐쇄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른 대학병원 응급실을 갔으나 그곳도 비슷한 상황. 하필 코로나가 심할 때 아파버리니 병원 진료받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러다 집 근처 2차 종합병원이 생각나 그곳으로 갔다. 마찬가지로 복잡하고 힘들었지만 진료는 볼 수 있었다.


감사하게도 친절한 선생님을 만나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대상포진이긴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람세이 헌트 증후군이라고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귀에 침투되어 일으키는 병을 뜻한다고 한다. 보통은 안면신경에 먼저 침투되어 안면마비가 일어나고 그 뒤로 다른 신경들에 침투되어 두통, 어지럼증, 메스꺼움, 이명 등이 발생하는데 다행인 건지 반대로 진행 중인 것 같다고 하셨다. 안면마비가 오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 정도면 대상포진이 심한 건 아니지만 전정신경에 문제가 생겨 일상생활이 힘드니 입원을 권유했지만 아이들도 있고, 일단 통원으로 주사치료를 받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편히 침대에 누워 4.5시간 주사를 맞는 것도 아니고 자리가 없으니 앉아서 맞는데 이틀을 그러다 계속 나오는 구토와 어지럼증이 심해 눈도 못 뜰 지경이 되어 입원  치료를 결정했다.


코로나 검사를 하고 1인실에 있다가 이상 없음이 나와 다인실로 옮겨졌다. 신랑은 아이들을 챙겨야 했지만 혼자선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는 상황이라 병원에서 3일을 함께했다.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진 채 말이다. 입원해서 집중치료를 받으니 두통과 어지럼증, 메스꺼움은 조금씩 호전되는 것이 보였다. 다행이다. 감사하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병원에서 5일을 입원해 6일째 되는 날 급히 퇴원을 결정해 나왔다. 주사 치료는 다 끝났고 통원치료로도 가능할 듯싶어서다. 아이들도 기다리고 있고.. 엄마가 있다고 당장에 제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옆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마음이 다르다. 시댁에 있던 막내는 퇴윈 후 하루 지나서야 데리고 왔는데 잘 지내고 있었는지 얼굴이 밝아 보였다.


친정엄마는 퇴원 후 이튿날 한달음에 오셔서는 바리바리 싸온 반찬들과 한 상 푸짐하게 챙겨주셨다. 아이들 간식거리며 청소랑 뒷정리까지 해주시고 집으로 돌아가셨다. 내가 병원에 있을 때도 아이들 걱정에 몇 번 오셔서 반찬을 해주고 가셨는데 아깝게도 신랑이 버린 것도 있다고 했다. 우리 애들이 편식이 심하니 어쩔 수 없었겠지.


병원에서 퇴원 후 다음날부터 한방병원 치료도 병행하기 시작했다. 전정 증상은 주사 치료를 집중적으로 받아서인지 눈에 띄게 호전되어갔지만 염려했던 일이 발생했다. 병원에 입원한 지 삼일째부터 얼굴에 이상 신호가 감지된 것이다.


안면마비. 피해 갈 수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증세가 보이기 시작하자 하루가 다르게 심해지는 양상에 불안감과 우울감이 덮쳐왔다. 일반적인 안면마비와는 달리 초기에 치료하고 잘 쉬고, 잘 먹으면 보통은 몇 주 내로 돌아온다고 한다. 하지만 후유증이 남을 가능성은 확률적으로 더 높다고 하는데 그나마 나는 심한 편이 아니라고 담당 선생님이 말씀해주셨다. 그러니 마음 편히 먹고 잘 쉬고, 잘 먹고 치료 잘 받으면 된다는 말로 안심시켜주신다.


송길영 님의 '그냥 하지 말라'  책을 펼치니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이  한 문장이 시선을 잡아 끌어당긴다. 이 한 문장이 마중물이 되어 복잡하게 얽혀있던 생각들과 마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펼쳐지기 시작하다 어느 순간 한 방향으로 이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 한 문장을 곱씹어가며 하루 동안 멍~ 때리며 하나씩 차근차근 살펴보았다.



너무나도 명료하게 드러난 글자들, 리프레쉬, 휴식, 기회, 일상의 멈춤이 아닌 그 자리 그대로 쭈욱~ 현재 진행형으로 나는 여전히 멈추고 있지 않고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마무리, 끝, 점검, 돌아보기 등의 단어들도 떠오른다. 책에서 나온 새로운 시작과 끝, 새로운 끝과 시작이 한데 어우러져 한바탕 신나게 춤 줄 준비가 된 건 같은 착각이 들었다.


상황적으론 쉽사리 받아들여지지가 않는 현상들이 일어났다. 그런데 하루게 다르게 읽히는 책의 문장들이, 유튜브 영상들이, 강연자들의 강연 내용들이,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들의 이야기들 마저 내게 커다란 인사이트를 던져 주고 있다. 통증으로 인해 일상생활마저 온전치 않았고 모든 것들이 한순간 무너져 내렸다고 생각했었는데 실제로는 일상의 멈춤이 아니라 잠시 숨을 고르는 도움닫기 시간이었던 거다. 앞만 보고 달려오기만 했던 내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움과 정리정돈이 필요하다. 2022년을 준비하는 마음이 달라졌다. 적당한 시기에 꼭 필요한 것들이 몰려오고 있다. 나는 그것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다시 글을 쓰고 사색하는 시간에 집중해보려 한다. 그래서 속상하지만 우울하지만은 않다.  속상한 건 어쩔 수 없다. 받아들이고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며 살아가면 된다. 나는 더 성장할 것이고 단단해질 것이다. 나는 나를 믿는다. 내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나에게 더 집중하자. 그리고 귀한 인연들과 나누며 살아가자. 그게 나의 행복이자 가치이고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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