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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오라 Dec 31. 2021

계획이 없어도 불안하지 않다.

무계획이 계획

작년 연말 어느 해보다도 바쁜 연말을 보냈었다.

그동안 어떤 성과를 냈고 어떤 계획들을 달성했는지 또 이루지 못한 건 무엇이며 어떤 점들이 부족했는지 한 해를 돌아보고 다가오는 새해의 계획들을 세우며 드림보드도 만들었었다.


하지만 올해 연말은 정반대의 모습으로 하루하루 흘러갔다.

대상포진 바이러스로 인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인 엄마, 아내의 역할조차 해낼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말해 무엇하랴. 집안일조차 신랑이 도맡아 해 주었고 아이들도 아빠를 도와 일손을 거들어 주었다.


그렇게 대상포진 바이러스와 힘겹게 사투를 보낸지도 한 달이 넘었다. 일반적인 대상포진과는 다르게 귀 쪽으로 침투된 좀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람세이 헌트 증후군이라 불리는데 후유증이 남을 확률이 더 높은 병이기도 하다. 그래서 양방 치료와 더불어 한방 치료까지 병행하고 있다.


한동안 어지럼증이 심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고 눈이  완전히 감기지 않아 건조한 탓에 시력 또한 좋지 않았다. 그래서 핸드폰도 멀리했다. 카톡이나 메시지, 각종 SNS 활동들도 멈췄다. 크리스마스 연말 분위기로 들썩일 때 아무 활동도 하지 않았다. 외부 자극들과 정보들이 없으니 오히려 편안해지는 느낌도 들었다. 딱 하나 아쉬운 건 글쓰기를 하고 싶은데 못 쓴다는 거 그뿐이었다.


이제는 회복기로 접어든 단계인지 증상들도 호전을 보이고 어지럼증도 많이 좋아져 혼자서 움직이는데 큰 무리가 없을 정도다. 그래도 완치까지는 아직도 시간이 필요하다 하니 내 을 더 돌보라는 뜻이겠지 싶어 무리하지 않으려 한다. 새해가 코 앞이지만 아직까지도 연간 계획이라던지 목표나 비전을 세우지 않았다. 계획이  없는 게 계획이다.


출처-픽사베이


한동안 연간계획과 목표를 세우고 월간계획까지 쪼개며 치열하게 살았다. 계획대로 살았던 적도 그러지 못한 적도 있었다.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지 못했을 때 스스로를 닦달하고 자책도 많이 했었다. 물론 달성했을 때의 기쁨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지나쳐 버린 것도 다. 그래서 다가오는 2022년은 그렇게 지나쳐 버린 건 무엇인지 나를 더 돌아볼 생각이다. 한동안 못했던 정리와 비움에도 중심을 둘 예정이다. 그와 더불어 글쓰기도 말이다.


병원에 있을 때부터 밀리의 서재를 통해 밀라논나 장명숙님의 책을 전자책으로 들었다. 책을 보는 것보단  듣는 게 나을 듯싶어 틈틈이 들었는데 며칠 전 완독을 했다.  처음엔 기계음 같은 낭독이 어색했지만 오히려 눈을 감고 귀로 들으니 집중도 잘되고 편안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인생 내공 에세이라는 책 소개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큰 울림을 주는 책이었다. 내가 쓰고 싶었던 이야기하고 싶었던 내용들이 많아 놀랐고, 비슷한 생각들에 엄청나게 공감하며 나라면 이 주제로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 고민도 해보았다. 그리고 내가 그 나이가 됐을 때 꼭 이런 책을 쓰고 싶다는 바람도 품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선 다양한 삶의 경험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언젠가는 쓰고 싶었던 이야기 중에 하나가 미니멀 라이프다. 브런치나 블로그를 통해 가끔씩 쓰긴 했지만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이 책을 완독 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올랐다. 그래서 더더욱 정리와 비움을 중심에 두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됐다. 그럼에도 우선순위는 역시나 글쓰기. 이런 큰 틀만 세우고 다른 계획은 없다. 아니 오히려 계획을 세우지 않으니 조급한 마음도 달려야겠다는  생각들이 들지 않아 좋다. 온갖 계획들을 세우고 기대되는 새해를 맞이하는 것도 좋지만 지금은 강물이 흘러가듯 유유히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여유 있게 시작하면 그런 한 해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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