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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물결 Oct 04. 2024

9. 겉바속촉 존(John) 할아버지

겉표지만 보고는 책의 내용을 알 수 없듯이 존할아버지 인생도 그러하다. 

나의 또 다른 홈케어 고정 클라이언트 존(John) 할아버지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할아버지의 몸은 다양한 무늬/모양의 문신들로 가득했고 열손가락 마디들도 작은 글귀들로 빈틈없이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아주 걸걸하고 투박하면서도 술에 취한듯한 어눌한 말투로 나에게 들어오라며 손짓을 했다. 문신에 편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할아버지의 겉모습과 말투는 나를 조금 겁먹게 했다. 홈케어를 하면서 다른 할아버지 클라이언트한테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었던 터라 나는 무슨 일이 있으면 튀는 거야라는 마음으로 현관문과 다른 비상구를 눈으로 훑으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존 할아버지의 집은 불을 켜지 않아 아주 어두컴컴했고 마치 사람이 살지 않고 쓰지 않는 집처럼 휑했으며 공기가 달랐다. 거실로 들어서자 존 할아버지는 나에게 가방을 내려두고 소파에 앉으라는 말 한마디를 한 후 저녁 퀴즈쇼를 시청하셨다. 


존 할아버지를 위한 나의 업무는 밀프랩 (줄여서 meal prep = meal preparation, 식사준비)과 잡다한 업무/집안일이었다. 할아버지께 저녁을 드셨냐고 물어보니 "I am not hungry"라고 배가 고프지 않아서 밥을 드시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부엌 및 집 안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부엌과 냉장고에는 음식이 하나도 없었고 그나마 있는 것들은 유통기한이 지난 상태였다. 침실은 베드슅 (bed sheet, 침대보)만 깔려 있고 아무 거도 없었으며 마치 내일이라도 떠날 사람처럼 캐리어 두 개가 꺼내져 있었다. 할 일이 없어 심심했던 나는 애써 부엌 테이블을 닦아보고 괜스레 할아버지 옆에 앉아 그 당시 잘하지 않던 영어로 퀴즈쇼에 대한 질문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나의 존 할아버지 첫 쉬프트는 끝이 났다. 


존 할아버지를 여러 번 방문하면서 나는 할아버지가 어떻게 생계를 꾸리고 왜 항상 집에 먹을 것이 없는 것이 의문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존 할아버지를 알게 되었는데 할아버지는 국가에서 보조금을 받아 생활을 하시는데 보조금이 들어오는 날이 되면 근처 펍에 가서 돈을 쓰고 오시며 주변에 모르는 사람한테도 술을 사준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보조금을 친구한테 맡겨서 필요할 때마다 받아서 쓰는데 할아버지 친구는 존 할아버지에게 돈을 그대로 다 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늘 돈과 먹을 것이 부족했다. 그리고 어느 날은 약을 타와야 했는데 돈이 부족해서 약을 받아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때 회사에 전화를 해서 상황을 알렸는데 나의 카드로 먼저 지불하라는 얘기를 듣고 당황스러웠지만 내 카드로 먼저 지불을 했다. 그렇지 않으면 할아버지가 약을 드실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사에 다시 청구를 했는데 이 상황을 설명하고 내 돈을 받기까지 꽤 시간이 걸려서 속이 부글부글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나는 이 일을 존 할아버지에게도 설명을 하면서 돈을 잘 관리를 해야 할 것 같다고 설명을 하며 할아버지 보조금을 잘 쓸 방법에 대해서 같이 의논을 했다. 존 할아버지께서 보조금이 들어오는 카드를 내게 건네주시면서 보조금이 들어오는 날짜에 필요한 것들을 알아서 장을 봐오라고 하셨다. 그렇게 보조금이 들어오는 날이 되자마자 나는 할아버지 카드를 들고 가서 할아버지가 요청하신 인스턴트 수프 여러 팩과 계란, 소시지, 우유와 같은 먹을 것들을 산 후 영수증을 챙겨서 존 할아버지네로 다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저 멀리 누군가 보였는데 꼭 존 할아버지 같아서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역시나 존 할아버지였고 존 할아버지께서는 길가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줍고 계셨다. 존 할아버지가 종종 담배꽁초 주우러 나가서 집에 없을 수도 있다 얘기를 듣긴 했지만 이렇게 또 실제로 본 적은 처음이라 할아버지께 위생적이지 않다고 잔소리를 하며 할아버지를 모시고 집으로 왔다. 


집으로 돌아와 음식이라고는 소세지롤만 아는 할아버지를 위해 계란국과 참치계란말이를 저녁으로 만들어드렸다. 처음 먹어보는데 정말 맛있다며 허겁지겁 드시는 걸 보고 의문이 들었다. 왜냐하면 할아버지는 늘 "I am not hungry"라고 배가 고프지 않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아버지께 왜 매번 배가 안 고프다고 얘기하시냐 집에 먹을 거도 없어서 뭘 드시지도 않은 거 같은데 밖에서 사 드니샤 하니 그렇지 않다고 하셨다. 그러시곤 하시는 말씀이 배가 고프다고 얘기하면 내가 일을 해야 되니까 미안해서 그랬다고 하셨다. 그래서 앞으로 그러지 마시라 말씀드리고 나는 여기 돈 받고 일하러 오는 거고 요리하는 거 힘든 일 아니라고 하니 알겠다고 하셨다. 그 후 나도 할아버지께 배고프시냐 묻지 않고 뭐 드시고 싶냐로 바꿔 묻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할아버지께서는 여전히 내가 힘들까 봐 굽지도 않은 생 소시지를 그냥 빵에 넣어서 달라고 하셨는데 나는 늘 못 들은 척하고 수프나 계란 아니면 간 소고기와 야채를 이용하여 단백질이 들어간 음식을 만들어드렸다. 그러면 존 할아버지는 또 후추를 가득 뿌려 허겁지겁 드셨다. 


그러던 어느 날, 몇 주 동안 존 할아버지를 방문할 수 없는 사정이 생겨 다른 스태프가 존 할아버지를 방문하게 되었다. 나는 존 할아버지가 걱정이 되어 스태프들끼리 의사소통 가능한 수첩에 "I am not hungry"라는 말은 진짜가 아니니 저녁을 꼭 차려드려야 할 것, 자주 방문하는 약국 및 약 받아오는 날, 보조금 들어오는 날 등과 같은 필수적인 것들을 적어두었다. 그리고 회사에도 이 사항을 존 할아버지를 방문하는 스태프에게 전달해 달라고 이메일을 보냈었다. 


시간이 지나 다시 존 할아버지를 내가 방문하게 된 날 저녁 할아버지께 잘 지내셨냐 물었더니 잘 지냈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냉장고를 열어 음식들과 유통기한을 확인했는데 음식이 내가 가기 전과 별반 차이가 없어서 할아버지께 다른 스태프가 음식을 잘 챙겨주었냐고 물어보니 내가 없는 몇 주 동안 저녁을 안 드셨다고 했다. 왜 그 스태프에게 저녁을 챙겨달라고 말하지 않았냐고 하니까 걔들은 와서 아무 거도 안 하고 핸드폰만 만지다 집에 갔다고 말씀하셨다.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는 또 한 번 속이 부글부글했다. 이거는 내가 적어둔 인수인계 노트를 눈여겨 읽지 않았다는 뜻이고 회사에서도 제대로 전달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부글거리는 마음을 요리로 가라앉히며 존 할아버지에게도 내가 없어도 스태프들한테 밥을 챙겨달라 얘기를 해야 한다고 하니 알겠다며 대답은 하셨는데 몇 주간 일어났던 일을 생각해 보면 나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날 저녁 할아버지가 저녁을 드시는 동안 할아버지 가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캐리어 두 개가 놓여있던 방은 할머니께서 쓰시던 방으로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난 후 빈방이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거실에 유일하게 있는 장식품이라곤 티브이 밑에 있는 먼지 쌓인 아주 오래된 인형 몇 개가 전부였는데 이것도 할머니가 간직하시던 인형이라 그대로 두신 거라고 했다. 그러시면서 할아버지 열 손가락 마디에 있는 문신은 LOVE (사랑)와 PEACE (평화)라고 보여주시는데 할아버지 젊은 시절은 지금과 달리 사랑과 평화로 가득한 삶이었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두런두런 나누는데 갑자기 투둑투둑 소리가 나더니 창밖으로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엉거주춤 일어서 방으로 절뚝거리며 걸어가시더니 작은 우산 하나를 가져와 나에게 건네주며 집에 맞지 말고 우산을 쓰고 가라고 하셨다. 그렇게 나는 할아버지가 빌려주신 우산 덕분에 차가운 겨울비를 맞지 않고 따뜻하게 집에 잘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몇 달을 존 할아버지를 방문했고 더 이상 존 할아버지네로 오지 못하게 된다고 말씀드려야 하는 순간이 왔다. 존 할아버지네 마지막 쉬프트가 끝나갈 즈음 존 할아버지께 오늘이 마지막 근무고 어디로 가는지 왜 그만두는지 말씀드렸다. 그러자 존 할아버지께서 갑자기 벌떡 일어서시더니 방으로 들어가 커다란 망치를 들고 나와 바닥에 앉아있던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 순간 바닥에 앉아 할아버지를 위로 올려다보며 내가 알던 존 할아버지가 맞나 도망쳐야 하나 이미 늦은 건 아닌가 머리부터 막아야겠다 생각하던 찰나 존할아버지가 대뜸 큰 소리로 소리치듯이 말하셨다 "You answer yer or no!" 예 아니오로 대답하라는 존 할아버지의 말에 나는 당황해서 무엇에 예 아니오로 대답해야 하냐고 반문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You need to visit me sometimes otherwise I will hit you"라고 가끔 자기 집에 놀러 와야 한다며 대답하라고 하셨다 안 그러면 망치로 때릴 거라고 뒤에 덧붙이시며... 나는 그제야 할아버지께서 농담한다는 걸 알아차렸지만 녹이 슨 커다란 망치를 올려다보고 있으면 이게 농담인지 아닌지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나는 그 순간 정말 저 망치가 나를 내려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순간적으로 압도당했었기 때문이다. 존할아버지께 알겠다고 종종 올 테니 밥 꼭 챙겨달라고 하고 담배꽁초 주우러 다니지 마시고 남들한테 술도 사주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러자 존할아버지께서도 알겠다고 하시더니 밤길이 위험하니 망치를 집에 가지고 가라며 손에 쥐어주시려 하자 나는 망치가 너무 크고 무겁다고 집에 두시라고 했다. 하마터면 나는 저 큰 망치를 손에 쥐고 지하철을 탈 뻔했다. 


내 이름을 늘 깜빡하셔서 다양한 이름으로 날 부르던 존 할아버지는 마지막 날 내가 할아버지 집을 나서기 전에 수첩에 내 이름을 다시 적으시고는 오렌지색 현관 등을 켜고 밖으로 나와 나를 배웅해 주셨다. 어렸을 때 시골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갈 때 차 뒷좌석에 앉아 뒤를 바라보면 늘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차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셨던 그 모습과 겹쳐 보였다. 그 모습을 보니 발이 안 떨어져서 존할아버지께 저녁 드셔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마지막 쉬프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도 나는 할아버지께서 살던 동네 이름을 들으면 존할아버지가 생각난다. 


존 할아버지 그간 저녁 잘 챙겨드신 거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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