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
피터(가명) 아저씨를 생각하면 내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얘기를 아주 많이 들어왔다. 어린 시절 약 몇 년 간의 텀을 두고서 그 나이대 특히 여자아이에게서 거의 발병하지 않는다는 자가면역질환에 두 번 걸렸던 적이 있다. 두 번 다 다른 병명이었는데 그중 하나는 너무나도 생소한 병이라 그 병명과 상황을 전달해 주던 그 당시 의사 선생님의 당황스러운 표정과 말투가 생각난다. 그때 내 옆에는 아빠가 같이 있었고 아빠는 치료 가능 여부와 생존율을 물어보았다. 의사 선생님과의 면담을 마치고 나가며 닫히는 문틈 사이로 의사 선생님은 아빠에게 절대 인터넷 검색을 하지 마시라 신신당부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는 인터넷이 지금처럼 많이 발달되지 않았었기 때문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와 의견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인터넷을 검색하면 지식백과와 같은 곳에서 생존율이 낮다는 내용이 제일 먼저 나왔다. 아빠는 의사 선생님의 신신당부를 무시하고 인터넷에 나와있던 그 생존율을 확인한 후 충격을 받았고 우리 집은 초상집 분위기가 되었다. 이 당시 나는 청소년이었는데 죽음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일, 멀게만 느껴지는 일이어서 대수롭지 않게 다가왔다. 다행히도 내 증상은 피부로 나타나 조직검사를 통해 병을 발견할 수 있었고 빠르게 약물치료를 시작해 약 1여 년간의 약 복용 후 완치될 수 있었다.
지금은 병이 우리 삶에 그리고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알지만 저 때 어린 나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피터 아저씨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에 한 칠팔십 프로 정도만 이해했고 마냥 부모님이 하시는 잔소리 정도로 생각했었다.
내가 피터 아저씨를 만난 건 지금으로부터 5-6년 전 즈음이다. 고정 클라이언트 집으로만 방문하던 어느 날 홈케어 에이전시에서 새 클라이언트 집인데 가 줄 수 있냐는 연락을 받았다. 일주일에 약 두 번 정도 가서 transferring, toileting, showering, dressing, feeding 등과 같은 것을 포함하는 ADLs (The activities of daily living - 일반적 생활 활동) 및 집 청소를 도와주는 조건이었다. 피터 아저씨 집 앞에 도착한 첫날 나는 하얀 대문 앞에서 있는 것만으로도 피터 아저씨네는 경제적으로 굉장히 부유한 가정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딩-동 초인종을 누르자 안에서 강아지가 짖는 소리가 났고 몇 초 지나지 않아 작은 갈색 푸들과 피터 아저씨 부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와 반겨주었다. 피터 아저씨네가 사는 집은 아주 큰 2층집이었고 아저씨는 1층 거실에 환자 침대를 비롯한 아저씨에게 필요한 모든 물품들을 비치해 두고 그곳에서 생활을 하신다고 했다. 다행인 것은 그래도 나라에서 지원이 꽤 많이 나오기 때문에 나와 같은 요양보호사가 주기적으로 찾아와 오롯이 가족들이 케어해야만 하는 부담을 덜어주고 집으로 고정적으로 방문하는 방문 간호사도 있다고 하였다. 그래도 피터 아저씨를 전반적으로 돌보는 사람은 아저씨의 부인과 장모님이라고 했다.
피터 아저씨는 부인과 자식 네 명을 책임지는 가장이자 굉장히 성공한 젊은 사업가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병마가 찾아와 젊은 나이에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접어야 했다고 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피터 아저씨의 경우 병의 진행 속도가 굉장히 빨라 물론 정신적으로는 괜찮지만 육체적으로는 모든 활동을 스스로 할 수 없게 되어 일상생활 하나하나 다 도움이 필요한 상태였다. 인지적으로는 문제가 없어 이 부분이 아저씨를 더 힘들고 슬프게 한다고 했다. 피터 아저씨의 가족들은 말하는 기능도 상실한 아저씨와 소통하기 위해 눈 깜빡임으로 대화를 할 수 있게 알파벳을 쓴 글자판을 만들어 그것을 종종 사용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것으로 충분하진 않았다.
첫날 내가 맡은 임무는 다른 요양보호사와 함께 피터 아저씨를 full sling hoist (환자를 이동할 때 옮기는 기구)를 사용하여 침대에서 샤워체어로 옮겨 샤워를 시키는 일이었다. 피터 아저씨를 침대에서 샤워 체어로 (shower chair - 샤워를 할 때 쓰는 바퀴 달린 의자) 옮길 때 피터 아저씨는 공중에 앉아있는 상태로 기계에 매달려 있었는데 그때 무언가 바닥으로 투둑 하고 떨어졌다. 내려다보니 대변이 조금 떨어져 있어 머리를 살짝 숙여 들여다보니 항문은 열려있었지만 대변이 밀려 나오고 있지 못한 상태였다. 루게릭병은 어느 부위의 운동신경세포를 침범했느냐에 따라서 증상이 다양한데 보통 근육약화, 삼킴 장애, 그리고 호흡곤란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병이다. 아저씨는 루게릭병 대부분 증상을 가지고 있었고 항문근육까지 약해진 상태라 배변활동조차 어려운 상태였던 것이다. 옆에서 아저씨를 옮기는 것을 같이 도와주던 피터 아저씨의 부인은 피터 아저씨가 배변활동을 못 한 지 며칠이 지났고 이럴 때 손가락을 집어넣어 대변을 빼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간호사가 된 지금까지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나는 호주 요양보호사가 된 지 몇 달 만에 수지관장을 하게 되었다. 장갑을 여러 겹 낀 후 손가락으로 겉에서부터 조심스레 조금씩 대변을 파내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딱딱한 대변은 아니었기에 대변을 빼내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으나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데 굉장히 어눌한 말투로 "No (안돼, 그만)"라고 여러 번 외치다 이내 무기력하게 hoist에 매달려 있는 피터 아저씨를 보는 게 마음을 더욱 불편하게 했다. 피터 아저씨는 자기 루틴이 있고 꽤 까다로운 사람이라고 했는데 처음 보는 아시안 요양보호사 둘이 와서 적응하느라 시간도 걸리고 그리고 대변까지 파내야 하는 일이 아저씨에게는 견디기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대변을 다 파낸 후 나는 다른 요양보호사와 함께 아저씨를 샤워를 시킨 후 침대로 옮겨 피터 아저씨 장모님 그리고 부인과 함께 아저씨 옷을 입혔다. 옷을 입히는 와중에 피터 아저씨는 계속해서 불편함을 소리로 표현했고 해결하려 해도 해결되지 않자 피터 아저씨 부인은 옆에서 도와주고 있던 본인의 어머니 즉 피터 아저씨의 장모님에게 언성을 높이며 언쟁을 했다. 오랜 간호는 가족도 지치게 하는 게 보였고 본인 때문에 언쟁하는 가족을 바라보는 피터 아저씨의 눈물 고인 눈에는 많은 게 담겨있는 것 같았다. 물론 병마를 대하는 긍정적인 자세를 가진 환자와 가족들도 많다는 것을 알고 특히나 아직까지 완치할 수 없는 병마와 싸우는 환자들에게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는 나이지만 피터 아저씨를 보고 있노라면 본인이 이루었던 과거의 업적과 영광을 뒤로한 채 움직이지 못하는 몸에 아저씨의 아주 멀쩡하고 건강한 정신이 갇혀버린 것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이 피터 아저씨를 만난 후 조금씩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피터 아저씨네는 피터 아저씨를 편안하게 해 주기 위해 그들만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했고 가족들 언쟁이 늘 그렇듯 그 순간 잠시 서로에게 날 선 말을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내 화해하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피터 아저씨를 침대에 잘 앉혀드린 후 욕실을 정리하고 집을 청소를 하고 나니 약 세 시간이 지나가 있었다. 그렇게 그날 첫 쉬프트를 끝낸 후 나는 그 후로도 서 너번 정도 더 피터 아저씨네를 방문했고 피터 아저씨와도 조금씩 친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피터 아저씨네를 방문하기 며칠 전 나는 에이전시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에이전시는 이번주 피터 아저씨네 쉬프트가 취소되었고 더 이상 피터 아저씨네 쉬프트를 가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 이유를 물어보자 피터 아저씨 병 진행 속도가 너무 빨라 호흡까지 문제가 생겨 며칠 전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내 클라이언트 피터 아저씨와 마지막 인사도 없는 작별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