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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A Oct 01. 2021

당면에 핀 무지개를 보았나요?

홈메이드 비빔당면





고향이 주는 이끌림은 예사롭지 않다. 나는 서울에서 자랐지만 나기를 부산에서 태어났다. 방학 때마다 부산 외가에 놀러 가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면 늘 마음 한 편의 아쉬움과 뭔지 모를 무언가를 두고 오는 듯한 감정들이 들었지만, 그땐 그저 또래의 사촌형제들과 더 놀고 오지 못한 아쉬움이려니 했었다. 하지만 언제나 부산이 그립고 애틋한 건 고향이라는 단어가 주는 푸근함 때문이었을까. 그래서인지 부산에 관한 이야기가 들릴 때면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게 되고, 부산에 갈 때면 늘 먹어왔던 음식부터 심지어는 먹어보지 못한 음식들까지 왠지 모를 이끌림에 의해 찾아 먹어보기도 하고, 처음 먹어본 음식이라도 어지간하면 입에 잘 맞아 꾸준히 찾게 되었다. 


부산 외할머니댁에 놀러 갈 때면 먹거리로 단연 최고였던 곳은 '자갈치 시장'과 '부평 깡통시장'이다. 서울 촌년(?)으로 살던 내게 부산 시장은 특히나 신세계였다. 서울에선 잘 체감하지 못하고 지냈던 북적북적하고 생기 있는 시장 문화는 나와 너무나 잘 맞아, 어린날 백화점의 장난감 코너보다도 쉽사리 빠져나오기 힘들 지경이었다. 살아있는 낙지가 어항(?)에서 날 보며 우아하게 헤엄을 치고 있고, 할머니께서 늘 손수 가시를 발라주시던 환상적인 맛의 빨간 고기 (그땐 이름을 잘 몰랐는데, 커서야 그 생선이 귀한 '금태'라는 걸 알았다, 그러니 맛이 환상일 수밖에..)가 새빨간 자체를 뽐내며 어서 날 구워 잡솨하며 누워있었다. 특히, 시장에서 공수한 닭발로 만든 할머니표 닭발 무침과, 시장에서 바로 손질해 구워 먹는 싱싱한 꼼장어구이는 먹어본 자만이 그 맛과 식감을 기억할 수 있다. 그뿐이랴, 동남아 여행지엔 좌판에서 먹는 노상 쌀국수가 있다면, 부산엔 비빔당면과 물떡이 판을 쥐고 흔든다. 


그중, 비빔 당면은 원조인 부산이 아닌 오히려 서울에서 처음 맛을 보게 된 특이 케이스인데, 한 번 맛본 뒤로는 그 알록달록했던 무지개 빛 비빔당면이 자꾸만 눈에 밟혀 집에서 직접 어울릴법한 재료들을 공수해 만들어 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고향의 맛은 이렇게 나의 미각을 점령한 것에 만족하지 않고, 나의 요리 세계관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양념장 맛이 최대 관건일 정도로 그의 역할이 큰 음식인 비빔당면은, '자칭' 양념장의 고수인 나에게 다행히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기본 재료로 당면과 부추, 어묵과 단무지가, 그 외 재료는 식감과 색감을 위해 추가하면 더 좋은 것들이고 양념장은 하루정도 미리 만들어두면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가 숙성되어 위장과 대장이 맞이할 내일의 안녕을 보다 반갑게 마주할 수 있다. 그럼, 이제 고향의 맛을 즐기러 가볼까나.   

 



* 재료: 당면 2인분, 채 썬 어묵 3장, 데친 부추 1종이컵, 채 썬 당근 1종이컵, 채 썬 단무지 1종이컵. 
* 어묵 밑간: 진간장 1T, 설탕 1T, 물 1T.
* 부추 밑간: 참기름 1T, 소금 한 꼬집.
* 당근 밑간: 후추 톡톡, 소금 한 꼬집.
* 비빔 양념장: 진간장 4T, 맛술 2T, 고춧가루 2T, 다진 마늘 2T, 설탕 2T, 식초 2T, 참기름 2T, 통깨 2T, 후추 1/2t.


1. 올리브유를 살짝 두른 팬에 채 썬 어묵을 넣고 아주 살짝만 볶다가, 진간장 1T, 설탕 1T, 물 1T을 넣고 조리듯 볶아준다.

(*어묵은 사용 전 미리 뜨거운 물에 5-10분 정도 넣었다 빼주면, 기름기와 불순물을 제거할 수 있다.) 

2. 부추를 끓는 물에 20초 정도 살짝 데친 후, 참기름 1T, 소금 한 꼬집을 넣고 조물조물 무쳐준다.

3. 올리브유를 살짝 두른 팬에 채 썬 당근을 넣고 후추 톡톡, 소금 한 꼬집을 넣고 1분 정도만 살짝 볶아준다.

4. 당면을 끓는 물에 6-7분 정도 삶아준 다음, 찬물로 헹궈준다.

먹을 준비 완료.

5. 자, 채 썬 단무지와 양념장까지 준비되었다면 이제 재료들을 한데 넣고 야무지게 비벼본다.




일곱 빛깔 비빔당면 한 그릇을 호로록.


쫄깃한 어묵과, 아삭한 당근과 단무지, 향긋한 부추에, 마른 김으로 고소함까지 더해주니 나만의 일곱 빛깔 무지개가 한 그릇에 가득 담겼다. 먹기 전부터 격한 기대감과 흥분으로 심장이 마구 나댄다. 투명하고 탱글탱글한 당면에 붉디붉은 양념장까지 듬뿍 올려주면 화룡점정. 하나하나 살펴보면 소박한 느낌의 재료들과 당면이 만났을 뿐인데, 양념장 하나로 서로 어우러져 입맛을 제대로 돋워줄 특별한 음식으로 탄생한다.


음식 하나로 또 한 번 고향을 느낀다. 살아오면서 고향도, 음식도 내게 딱히 뭘 해준 건 없다고 생각해왔지만, 내가 음식을 먹고 고향을 떠올리면서 형용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낀다면 그 자체로 이미 내게 모든 걸 해준 셈이다. 그래, 까짓 거 내 미각과 요리 세계관쯤 평생 점령당해도 좋다고 본다.  






Bona가 준비한 오늘의 요리, Bon appétit [보나베띠]: 맛있게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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